초기 불상의 의례적 기능과 항마촉지인 예배상의 등장 -공양 대상으로서의 불상의 기능을 중심으로-
The Function of Early Period’s Buddhist Icon and the Advent of Bhumisparsha Mudra Statue -In the focu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offering and sta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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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쿠샨시대 간다라와 마투라의 불교도상에 있어서 단독예배상의 수인(手印) 중에 항마촉지인(降魔 觸地印)이 등장하지 않았던 사실은 특이한 현상으로 주목되었다. 항마촉지인은 불전도(佛傳圖) 안에서는 이미 분명히 확립된 도상이었음에도 단독상에서 나타나지 않는 것은 도상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그 이유로서 불상의 원래의 존재목적은 석가모니를 대신하여 대중의 공양(供養)을 받는 것이었음에 주목해 보았다. 석가모니의 재세 시절에 대중들로 받았던 공양을 석가모니의 입멸 후에는 스투파가 대신하였고, 이어 점차 불상도 공양의 대상으로 발전해 갔다고 볼 수 있는데, 실제 석가모니가 대중들로부터 공양을 받을 때, 혹은 공양을 받고 난 후의 모습을 불상으로 표현한다면 선정인(禪定印), 설법인(說法印), 혹은 발우를 든 모습 등으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선정인은 석가모니가수행하고 있는 곳에 대중들이 공양할 음식을 들고 찾아갔을 때 만날 수 있는 수인이었을 것이며, 설법인은 대중공양이 끝나고 공양에 대하여 법보시(法布施)를 행하는 석가모니의 모습으로 규정할 수있다. 아울러 발우를 든 모습은 공양을 받기 위해 탁발을 다니는 석가모니의 모습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항마촉지인은 공양과 무관하다. 문맥상 지신(地神)을 불러내어 마군을 항복시키는 장면에서는 공양 행위가 등장할 여지가 없다. 항마촉지인은 사상도(四相圖), 팔상도(八相圖)와 같은 불전도 안에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에서 주로 사용되었고, 특정 장소, 즉 항마성도가 일어났던보드가야를 상징하는 도상으로서 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는 추측이 되지만, 일반적인 공양의 대상으로서는 의미를 지닐 수 없었기 때문에 단독예배상으로는 제작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해보고자한 것이다. 그러나 굽타시대 이후로는 점차 항마촉지인을 결한 단독예배상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러한양상은 불상이 단순히 공양의 대상이었던 것에서 보다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공양의 대상으로서의 불상이란 개념은 재가신도들의 입장에서 불상의 기능을 대변한다면, 점차 출가비구들에 의한 불상 예불이 일상화되면서 항마성도는 출가비구들의 이상, 즉 그들이 닮아가야 할 정각(正覺)의 모습을 투영한 상으로서 일종의 관불수행(觀佛修行) 의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던 것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양상을 불상에 새겨진명문을 통해 살펴보고자 하였다. 결론적으로 항마촉지인 단독예배상의 등장은 불상에 대한 개념과기능이 변화한 것으로서 주목해야할 현상으로 생각된다.
Abstract
In the Buddhist art of Kushan period, the Bhumisparsha mudra was available only in a narrative image but not in a detached Buddha statue. This fact has attracted attention as a peculiar phenomenon. It is presumed that there must be a certain reason why any detached Bhumisparsha mudra statue was not produced at that period even this mudra was apparently established in the field of narrative art. This thesis tried to suggest that it was caused because the original purpose of Buddha statue was to receive the offering of common sorts instead of living Buddha himself. For the first time, this function was belonged to Stupa. But as time goes by, the Buddha statue succeeded this important role. In this point of view, the mudra of many detached Buddha statues in Kushan period, for example Dhyana mudra, Abhaya mudra and clasp a meal bawl are concernd with offering. These mudra could be seen to common sorts before, during or after they offer a meal when Sakyamuni stayed in the earth. Sakyamuni’s periods, peoples bring meals when Sakyamuni was meditating in the forest(Dhyana mudra), or was doing mendicancy in a village(mudra of clasp a meal bawl). And they can listen to Buddha’s preaching as a repay of their offering(Abhaya mudra). But Bhumisparsha mudra was not concerned with offering. When Sakyamuni defeat demons in Bodhgayā forest, people couldn’t approach to him for offering and no one could witness that scene. So a statue of this mudra was useless for offering to peoples. But after the Gupta period, as the function of Buddha statues were extended from an object of common sort’s offering to a subsidiary to monk’s meditation, Bhumisparsha mudra buddha statues were appeared in common. This mudra becomes a symbol of enlightenment which were spiritual goal of all buddhist monks. Further more, Bodhgayā, the first representative temple of Bhumisparsha mudra becomes an object of the most envy place for world wide buddhist monks, this icon spreaded to all over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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