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촉지인계’ 아미타불상에 대한 試考 - 항마촉지인 도상의 轉用과 확산 要因 -
A Preliminary Thought on the Bhumisparsha Mudra Amitabha in Unified Silla - The Factors of Transformation and Expan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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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군위 삼존불상은 1962년 발견 이후 불교미술 연구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았다. 특히 항마촉지인과 비슷한 수인을 취한 본존 아미타불은, 존명과 도상의 불일치 문제를 만들며 여전히 귀결되지 못한 다양한 논의를 이끌었다. 이 글에서는 이 수인을 항마촉지인으로 볼 수 있는지, 왜 항마촉지인이 아미타불의 수인으로 선택되었는지, 나아가 항마촉지인이 석가불의 별인(別印)에서 제불의 통인(通印)으로 확대된 실재적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밝히고자 했다. 군위 삼존불상 본존의 수인은 형식에서 항마촉지인의 전형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항마촉지인 본연의 의미가 함축된 ‘촉지(觸地)’와 ‘선정(禪定)’이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를두고 항마촉지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비슷한 시기 당에서는이러한 손 모양의 아미타불상이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신라가 그러한 불상을 모방했다고 생각되며, 또 흐트러진 손 모양에 무게를 둔다면 항마촉지인의 본질은 잃었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당에서는 전형적인 항마촉지인의 아미타불상도 만들어졌다. 존명과 도상의 불일치 문제를지적할 수 있겠지만, 부처 간에 도상 공유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즉, 특정 부처의 특별한 도상일지라도 다른 부처의 이미지로 빈번히 전용(轉用)되었다. 더욱이 아미타불의 경우는 도상에 대한 규범이 부재했었기에, 불상 ․ 불화로의 시각화 단계에서 수인을 포함한 모든 도상을 다른 존상의 이미지로부터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통일신라에서는 항마촉지인의 불좌상이 아미타뿐 아니라석가, 약사의 이미지로도 널리 통용되었다. 이 변화에는 석굴암의 기념비성, 그리고 주재료인 화강암의 물성(物性)이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다. 단단한 화강암의 특성상, 양손과 팔을 신체에 전부 붙여 표현하는 항마촉지인은 입체감을 드러내면서도 상대적으로 조각하기 쉬웠기에자연스레 선호되었다고 결론했다.
Abstract
Since its discovery in 1962, the Kunwi Buddha Triad has consistently garnered the interest of researchers studying Buddhist art. In particular, the triad's central figure of Amitabha is the source of various academic debates that remain unresolved. The most significant is the discrepancy in Buddhist iconography that arises from the hand gesture of Amitabha, which is similar to the Bhumisparsha mudra typically attributed to Shakyamuni. This paper aims to explore if the hand gesture of the Kunwi Amitabha should be identified as the Bhumisparsha mudra, why this particular mudra was chosen for Amitabha, and what caused the Bhumisparsha Mudra to shift from being a specific representation of Shakyamuni to a universal image that symbolizes all Buddha figures. The hand gesture featured in this problematic statue of Amitabha differs significantly in form from the typical Bhumisparsha mudra. Above all, the concepts of ‘Earth-touching’ and ‘Meditative’ that are fundamental to the Bhumisparsha mudra were not accurately depicted. While some interpret this omission as a failure to properly understand the Bhumisparsha mudra, it should be noted that Amitabha statues with these irregular hand gestures were already being created in Tang China. Therefore, Silla may have modeled its own statues after Tang examples, and if great weight is to be placed on the distorted hand gesture, the original meaning of the Bhumisparsha mudra was probably displaced. Additionally, it was not uncommon for different Buddhas to share aspects of the same iconography. In Unified Silla, the Bhumisparsha mudra was a component in the depiction of various Buddhas and appears in images of not only Amitabha but also Shakyamuni and the Medicine Buddha. This was influenced by several factors such as the monumentality of Seokguram Grotto and the nature of its primary building material, granite. Due to the hardness of granite, the Bhumisparsha mudra, which is expressed with both hands and arms attached to the body, was the naturally preferred hand gesture as this specific pose was relatively easier to scul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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