壺谷 南龍翼의 『燕行錄』과 華夷論
Yeonhaeng-rok (燕行錄), Record of Official Visit to Yanjing (燕京) and Hwaee-ron (華夷論) of Hogok (壺谷) Nam Yong-ik (南龍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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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호곡 남용익은 병자호란 이후 조·청 간 외교적 현안으로 부상한 도환인 처리 문제와 금물 교역 건을 위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명을 띠고 사행에 나섰다. 이번 사행의 삼사는 정사 허적, 부사 남용익, 서장관 맹주서로 구성되었다. 남용익은 병오년 사행 시에 목격하고 체험한 내용들을 시집 형식의 『연행록』으로 마무리해 두었다. 이 저술은 속작에 능했던 호곡의 시적 역량을 유감없이 확인시켜 준다. 한편 남용익은 『연행록』을 통해 과거 명·청 간에 진행된 전쟁의 흔적들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서술하였는데, 이는 ‘문물’로 지칭되는 시사·배·선박·수레·가옥·건물 등과 같은 서술단위와 유사한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수준이다. 더불어 남용익은 왕환 노정에서 접한 주변 경물 중에서 장관으로 평할 만한 정경들도 다수 취급했다. 이상의 전흔·문물·경물 묘사가 차상위 서술단위에 해당한다면, 단연 눈길을 끄는 최상위 서술단위는 연록 전체를 일관하는 화이 담론과 유관한 다양한 의미의 편린들이다. 남용익이 직조한 화이론은 중화문명에 대한 강렬한 향수와 삼강오상의 부지라는 두 겹의 기저 의미망으로 구축되었다. 전자가 의관·풍속·언어·예의 거동 등과 같은 문화양식을 빌려서 제도화된 사안이라면, 후자인 강상의 문제는 특정한 역사적 공간이나 상관물에 연루된 의인들에 의해 그 중요성이 환기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특히 후자의 경우 남용익이 평양성에서 기자의 맥수가에 화답하기를 기대했던 응징 심리와 동일한 의미의 좌표상에 배치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한편 지난 시기의 명조는 바로 남용익이 직조한 화이론의 양대 기저 의미망을 온전히 구현한 역사적 이상상이자 실체로 간주되었다. 더욱이 명조는 조선에 대해 절대 난망한 재조지은을 베푼 왕조였던 까닭에, 자연 남용익의 화이론은 복수세치론이라는 최종적인 국면으로 귀착하게 된다. 그러나 남용익은 복수세치론의 현실적 무모성을 충분히 자각하고 있었기에, 이미 지나간 그 모든 것들을 망각하기 위한 방편상 ‘조고’ 의식을 거행하기에 이른다.
Abstract
Nam Yong-ik had official visit to Yanjing in the year 1666 with purpose of resolving urgent diplomatic matters outstanding between Joseon (朝鮮) and Ching (淸). Nam Yong-ik, who was deft at quick-writing (走筆), summarized the result of visit in Yeonhaeng-rok , which was in the form of poetry collection. Among multiple Yeonhaeng-roks during Joseon dynasty, this type of Yeonhaeng-rok is not common. Nam Yong-ik especially put substantial weight in describing the vestige of the war in his Yeonhaeng-rok On top of those, he exposed his thought on Hwaee-ron (華夷論) in the various parts of Yeonhaeng-rok . The Hwaee-ron established by Nam Yong-ik had two layers of intense nostalgia on Sino-culture and keeping of Samgang-osang (三綱五常) in Confucianism. He defined past Ming (明) as the true historical entity who thoroughly succeeded Sino-centrism and Confucianism. Since Ming had helped Joseon during Japanese invasion, the Hwaee-ron of Nam Yong-ik is concluded as Boksoosechi-ron (復讐洗恥論) implying the chastisement of Ching. However, Nam Yong-ik had awareness that such vengeance is not realistically possible. Therefore, he performed a sublime Jogo (弔古) ceremony [Paying condolence to all past incidents] by way of a cup of drink. It is believed that the ceremony was a part of his psychological process in relieving the pain in his oppressed unconsciousness by putting Ming out of his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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