壺谷 南龍翼의 일본문명 견문
New Civilization Tour in Japan by Hogok(壺谷) Nam Yong-ik(南龍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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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양란 이후인 17세기 중후반을 활동기로 삼았던 남용익은 조선왕조가 취한 대외적 노선에 부응하기 위한 차원에서 일본과 청나라로 순차적인 사행에 나섰다. 정사 조형과 부사 유창이 종사관 남용익과 함께 핵심 원역을 구성한 1655년의 을미통신행은 삼사가 확정되는 과정에서부터 다소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육로 사행과는 판이한 해로 사행의 전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 28세의 남용익은 일본 내 주요 도시들의 놀라운 발전상과 다양한 문명들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남용익은 당시에 체험한 내용들을 통신사행 기록의 전범으로 평가받는 『부상록』과 『문견별록』을 빌려서 소상하게 서술해 두었다. 차후인 1666년에 작성된 『연행록』 속에는 선행된 일본 통신사행을 통해서 획득된 남용익만의 고유한 문명 비교의 시각이 확인된다. 이에 금번 논의에서는 남용익이 1680년(53세)에 『호곡만필』을 통해서 설정한 추후적 분류 체계인 ‘삼절경․삼장관․삼후례’라는 세 범주를 적용하여, 일본에서 견문한 신문명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소개하였다. 우선 남용익은 주변의 풍경과 조화를 연출한 상관의 망루와 도포 복선사의 수려한 전경, 그리고 일광산의 탈속적인 정경 등을 삼절경 속에 포함시켰다. 남용익의 절경 묘사는 서경적 차원의 묘사에만 한정되지 않고, 삼절경에 부속된 인위적 문명까지를 아울러 포착해 둔 특징이 발견된다. 한편 두 번째 분류 체계인 삼장관에는 삼도로 불리는 대판과 경도 및 강호의 발전상과 함께, 사행 노정에서 관찰한 해상․육상 교통수단 및 시장과 도로시설․교량 제도 등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이 범주는 남용익이 견문한 일본문명의 총체적 내용을 엿보기에 적실한 분류 체계다. 나아가 남용익은 『호곡만필』을 통해 대판과 통주, 경도와 북경을 상호 비교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삼장관 범주에는 엄청난 수효의 동자 금불상을 안치한 대불사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일본의 신흥 동광산업의 현황을 대변해 준다. 세 번째 범주인 삼후례에는 조선 사절단을 향한 일본민의 합장 축원 정성과 숙소로 배정된 사찰측에서 베푼 호의,, 그리고 강호에서 국서를 전달하는 공례를 거행하던 날에 보여준 일본 고관들의 접대 예절 등이 감동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특히 남용익은 일본측이 보여 준 접대 예절을 과거 조선이 명나라 사신을 접대할 때의 그것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용익은 귀국 이후에 통신사행을 통해서 견문한 일본 문명을 대상으로 한 선도적인 문명 번안 작업은 끝내 유보하였다.
Abstract
Nam Yong-ik (南龍翼), who was a government officer and an excellent poet, had diplomatic missions to Japan and Ching. In 1655, Nam Yong-ik visited Japan as a member of diplomatic delegation and had a tour on the amazing advance and new civilization in Japan. Nam Yong-ik recorded what he saw and felt in Boosang-rok (扶桑錄), he authored. When Nam Yong-ik authored Hogok-manpil (壺谷漫筆) in 1680, he described his visit to Japan in the classification system he made as; ‘three great sceneries (三絶境), three great developments (三壯觀) and three kind hospitalities (三厚禮)’. He first described natural landscape and man-made civilization of Japan in the section of three great sceneries. In the section of three great developments, he illustrated the advance and development of Osaka, Kyoto and Edo (current Tokyo). He also listed inland transportation modes, marine transportation modes, markets, roads and bridge facilities in the section of three great developments. Here, Nam Yong-ik compared major cities in Ching and Japan, which tells his view on the civilization of two countries. In the section of three kind hospitalities, Nam Yong-ik portrayed sincere manner of Japanese people on receiving Korean diplomatic delegation. This section tells that Nam Yong-ik’s observation was quite extensive and he had very keen and meticulous observation methodology. However, he did not include the adaptation work in the book, which he did after his return to Joseon based on his visit to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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