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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의 도왜와 그 후손들

Gonji who visited Japan, and the descenda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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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昆支는 5세기 후반 왜국으로 장기간 파견되었다. 이는 곤지의 백제 내 세력을 억제하고 자신의 자식에게 왕위를 계승시키기 위한 개로왕의 조치였다. 곤지는 河內飛鳥 지역에 정착한 후 그곳의 백제계 이주민들을 보호·결속시키면서 경제적 기반을 구축하였다. 곤지는 왜국에 체재하면서 후손을 형성하게 되고, 백제 내 세력과도 관계를 맺으면서 국내외적으로 지지기반을 형성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웅진초기 대내외적 혼란한 속에서도 아들인 동성왕이 즉위할 수 있었다. 왜국 내에서는 飛鳥戶造氏라는 후예씨족이 곤지의 명맥을 잇게 된다. 비조호조씨는 河內國 安宿郡에 기반을 두고 大和왕권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성장해 나간다. 이후 奈良‧平安시대에 이르러서는 율령관인들을 다수 배출하는데, 그 후손들은 계속해서 백제 곤지의 후손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곤지의 후손들은 고대 일본에 백제색이 농후한 문화를 형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Abstract

The Gongji was sent to Waeguk for a long time in the late 5th century. This was a measure of King Gaero to restrain Konji's forces in Baekje and to inherit the throne to his children. After settling in the Kawachi-Asuka area, Konji protected and united the Baekje immigrants and built an economic foundation. It is believed that Konji formed descendants while staying in Waeguk, and formed a support base both domestically and internationally by establishing relationships with the forces in Baekje. Based on this foundation, his son, King Dongseong, was able to take office despite internal and external chaos in the early days of Woongjin. In Waeguk a descendant clan named Asukabenomiyatuko-si succeeds Konji. Asukabenomiyatuko-si grows up by forming a close relationship with the Yamato Kingship based on the Asukabe-gun Kawachi-guk. Later, in the Nara and Hyeian era, many bureaucrats of statute were produced, and their descendants continue to emphasize that they are the descendants of Baekje Gonji. These descendants of Gonji played an important role in forming a culture rich in Baekje color in ancient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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