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현 사족의 서원 활동과 ‘原鄕之家'의 의미
Significance of Buyeohyeon Tribe’s Seowon Activity and the Concept of ‘Wonhyangjiga(原鄕之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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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7세기 이후가 되면 향촌사회에서 사족들은 정치적 위상을 유지하고 이를 기반으로 ‘향권’을 장악하기 위한 거점지로 서원을 활용하였으며, 그 결과 서원은 ‘향권’을 둘러싼 양반 사족들의 격쟁의 전초지가 되었다. 특히 18세기 이후가 되면 경제적 기반의 약화와 중앙집권체제 강화로 인한 양반층의 분열이 심화되었고, 향전은 신향과 구향의 충돌로 이어졌다. 향촌사회의 이런 분위기는 문중사회로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현상은 부여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부여현의 ‘향권 경쟁’은 양란 이후 유입된 세거사족들 사이에서 치열하게 나타났으며, 그 중심에 부산서원이 있었다. 숙종 47년(1719)에 완공된 부산서원은 김집・이경여를 배향한 서원으로 부여현의 재지사족들과 중앙의 공조 하에 건립된 최초의 서원이자 사액서원이었다. 따라서 부산서원을 중심으로 한 사족들의 서원 활동 속에는 부여현에 산재한 사족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부여현의 재지사족들 사이의 서원을 중심으로 한 ‘향권 경쟁’은 서원의 건립 과정, 운영과정 등 서원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서원 활동’ 과정 속에서 드러났다. 18세기 이후 19세기가 되면서 서원은 일종에 ‘향소’ 역할을 하고 있었다. 황옥을 중심으로 한 부여현의 재지사족들은 1789년 『부여향안』을 중수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원향지가’를 향안 입록의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원향지가’의 개념을 부각시킨 것은 향안 입록 기준을 세우기 위한 단순한 목적이 아니었다. 이는 18세기 이후 심화된 ‘모록’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부여현 재지사족의 ‘생존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Abstract
In the 17th century, tribes maintained political status in their regional society and utilized Seowon as a base to seize regional power based on it, as the result, Seowon became an outpost of fierce battle among the noblemen surrounding regional power. Particularly, in the 18th century, division of noblemen was intensified due to weakened financial basis and reinforcement of centralization system, and Hyangjeon was connected with conflict between Sinhyang and Guhyang. Such phenomenon was not exceptional also in Buyeohyeon. Regional power competition in Buyeohyeon appeared fiercely among Segeosajok, who entered after Yangran, in the center, there was Busan Seowon. Busan Seowon, completed in Sukjong’s reign 47th year(1719), was the first Seowon as well as Sa-aek Seowon, which was constructed in cooperation between Buyeohyeo Jaejisajok and the center, as the Seowon that produced Kim Jib・ Lee Gyeong-yeo. Accordingly, Seowon activity of Sajok mainly with Busan Seowon was essentially influenced by the interests of Sajok, who were dispersed over Buyeohyeon. Regional power competition among Buyeohyeon Jaeji Sajok mainly with Seowon appeared in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Seowon, operational process, and every Hyangchon activity through Hyangchon. At least, competition among Buyeohyeon Jaeji Sajok surrounding regional power was continued after the 17th century, also, they were active in Seowon activity mainly with Busan Seowon. In the 19th century, Seowon performed a kind of ‘Hyangso’. Jaeji Sajok of Buyeohyeon mainly with Hwang-ok repaired 『Buyeohyang-an』 in 1789, in this process, they highlighted the concept of ‘Wonhyangjiga’, and enjoyed this as a kind of privilege. Such phenomenon was a countermeasure to for Buyeohyeon Sajok to determine and protect their identity, who felt crisis of identity as Jaeji Sajok, due to ‘Morok’ phenomenon, which was intensified since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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