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기 중반 신라의 대일 관계 동향과 「買新羅物解」
Silla's Relationship with Japan in the Mid-Eighth Century and Mae-silla-mul-hae (買新羅物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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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중엽 신라와 일본의 관계에서 주목되는 사료는 『續日本紀』 天平勝寶 4년(752) 신라 왕자인 金泰廉 일행이 일본에 조공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들은 오랜만에 일본에 파견된 신라 사신이고, 성격·규모 등 여러 문제에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여전히 논란이 있다. 다만, 당시 김태렴 일행이 일본에 증여하였던 물품 품목을 적은 문서가 전해지고 있다. 바로 正倉院文書 「買新羅物解」이다. 이 문서에는 당시 교역이 이루어진 품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 시기 신라와 일본의 교역 양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752년 金泰廉 일행의 신라 사신과 「買新羅物解」를 중심으로 이하의 목적의식을 가지고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첫째, 「買新羅物解」를 통해 볼 때 752년을 경계로 그 이전과 이후에 신라 사신의 성격이 정치적 측면에서 교역적 측면으로 바뀌었다고 보는 설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교역과 정치를 구별하기보다는, 하나의 범주로 파악하려는 견해라 할 수 있다. 이 점은 「買新羅物解」의 사료적 재검토와 752년의 신라 사신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보다 명확해지리라 본다. 둘째는 「買新羅物解」 문서에 기록된 품목을 검토함으로써 8세기 중엽 신라와 일본 사이의 교역 양상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실 신라사가 일본에 증여한 물품에 대해 이처럼 상세히 적은 사료는 드물다. 그래서 「買新羅物解」에 보이는 품목과 문서 양식을 통하여 그 당시 신라와 일본의 교섭 관계의 실체에 대해 규명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는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買新羅物解」를 통하여 당시 신라와 일본 간의 외교교섭 관계가 어떠했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이에 대해서는 752년 사신을 파견한 신라를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그리고 「買新羅物解」를 보면 교관(交關)은 결코 자유무역이 아니라 문서의 형식에서도 드러나듯이 官司에 제출했던 국가주도의 교관 방식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는 '解'라는 문서 형식으로 신청하고 있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물론 「買新羅物解」 속에서 다양한 물품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교역적인 측면을 전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교관은 어디까지나 5위 이상의 계급 및 대량의 면이 直物로 필요하므로 실제로 아주 한정적인 교관이었다고 여겨진다. 즉, 그 이후 9세기 단계에 보이는 신라 상인과의 무역 교섭 관계와는 다르다. 그러므로 「買新羅物解」의 단계는 일정한 씨족집단이 장악하는 대외군사 및 해상교통의 외교채널이 존재하였던 그 이전 시기 형식의 연장선상에 위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752년의 경우는 율령체제 이후 국가가 집약한 결과로 나타난 대외교섭 형식의 하나라고 여겨지며, 또한 이후에 나타나는 신라무역 형식과는 다른, 이전단계에 보이는 제도적으로 이루어진 일국면으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당시 일본은 신라가 보낸 물건이 필요하지만, 외교 방식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국가가 『唐禮』를 바탕으로 한 율령체제를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던 시기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752년의 사건은 외교 혹은 대외교섭과 교관(교역)이 균형을 이룬 시기에 발생한 것이라고 파악할 수 있다.
Abstract
In the middle of the eighth century, the historical material that Kim Tae-Ryeom (金泰廉) came to Japan in Tenpyo Sho-ho (天平勝寶) 4(752) is something that should be considered in terms of Japan and Silla’s history. It was an envoy sent to Japan for a different objective from others. There are still unresolved issues regarding its character and scale. At that time, the documents that record the items of goods donated to Japan were recorded. This is the "Mae-silla-mul-hae" (買新羅物解). These documents detail the items that were traded at the time, which helps us to understand this aspect of trade between Silla and Japan during this period. In addition, it is most important to note that the trade in 752 was not free trade. It was a country-led trade that could be participated in only by those who submitted to the government office, as it appears in document form. This can also be seen from the application form in the form of "Hae" (解). However, it does not necessarily mean the inactivity of the trade between Silla and Japan because various items can be identified in the "Mae-silla-mul-hae(買新羅物解)." Meanwhile, the trade could be attended by nobles ranked 5th or higher, and a large amount of "Chiku-mul" (直物) was required. Therefore, it seems that it was actually a very limited trade. In other words, it was not the trade relationship with the Silla merchants that appeared in the ninth century. The "Mae-silla- mul-hae(買新羅物解)" period could be seen as an extension of the era during which forms of foreign military and maritime traffic diplomatic channels were dominated by certain clan groups. In other words, in the case of the year 752 trade between Silla and Japan, it is reasonable to consider it as one of the forms of foreign negotiations that resulted from the country's consolidation after the regulation of law (律禮), and also take into account the institutional aspect of trade of the before the late-Silla period (下代). At that time, Japan needed goods sent by Silla, but from the point of view of Japanese diplomatic policy, it was a time when the country was trying to follow the law system based on "Tang-rye" (唐禮). In this case, the event in the year 752 could be considered as a balanced period in terms of diplomacy or foreign negoti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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