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왕·신문왕대의 대일본관계-調物과 別獻物을 중심으로-
The relation to Japan during king Munmoo and king Shinmun period -Mainly focused about Jomool and Byeolheonm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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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문무왕과 신문왕이 일본에 보낸 調物과 別獻物을 통해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살펴본 것이다. 신라는 668년 일본과 국교를 재개하면서 일본 조정에 조물을, 별헌물은 천황을 비롯하여 諸親王등에게 보냈고 사신의 별헌물도 있었다. 이것은 신라의 內省, 진골 귀족의 공방에서 만들어졌으며 일본에 보낼 물품의 조달을 위해 신라는 倭典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일본은 신라왕의 조물과 별헌물 등을 가지고 간 신라 사신에게 답례품을 주었고 신라에 온 일본 사신 역시 물품을 가지고 왔다. 하지만 문무왕과 신문왕이 일본에 보낸 사신과 물품은 일본이 신라에 보낸사신 및 물품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일본은 東夷의 소제국이었고, 신라는 조공국으로, 문무왕과 신문왕대 조물과 별헌물을 가지고 온 신라 사신을 進調使, 조공사라고 기록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표현은 8세기 일본 지배층의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신라왕은 8세기에도 자신의 의사를 일본에 口頭 로 전달하였고 문무왕대와 신문왕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신라 사신은 679 년 이후부터 쓰쿠시(筑紫)에서 饗應을 받았는데, 이것은 왕경에서 이루어진 조공과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신라가 일본에 보낸 조물과 별헌물은 중국에 보낸 물품과 비교되며, 문무왕은 안승을 책봉하고 탐라에게 조공을 받기도 하였으며, 문무왕=호국용 설화는 신라가 당시 일본에 비우호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근대 동아시아사회의 조공-책봉관계에서 피조공국이 조공국에 별헌물을 보냈다. 당 황제가 원성왕과 경문왕 등에게 보낸 물품에서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신라가 요청한 것이었다. 신라가 일본에 보낸 별헌물 역시일본에서 요청하였을 것이고, 신라는 별헌물을 통해 일본을 蕃國視하였는데, 그 이유는 당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당의 무력 위협을 받고 있었던 신라는 일본을 번국시할 수만은 없었다. 때문에 일본에 사신을 자주 파견하였고 일본이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였다. 이와 같은 문무왕과 신문왕대 일본에 취한 신라의 이중적인 모습은 당과 보덕국에 대한 대응에서도 알 수 있었다.
Abstract
This thesis was about study of the relation to Japan during king Munmoo and king Shinmun period focused about Jomool and Byeolheonmool. Shilla reopend national relation with Japan in 668 and sent Jomool to Japanese royal court and Byeolheonmool to the king and king’s relatives, and Byeolheonmool by the envoy was also sent. These were made in Naeseong, craft room of aristocrats, Jingol and Waejeon was set to provide goods to sent for Japan. Japan gave a return presents to Silla envoys who had carried Jomool and Byeolheonmool of Shilla kings, and Japan envoys also carried presents to Shilla. But the envoys and goods to Japan sent by king Munmoo and king Shinmoon were much more than goods from Japan to Shilla. According to Japanseogi, Japan was a little empire in Dongyi, and Shilla was a tributary state and the envoys who brought Jomool and Byeolheonmool during king Munmoo and king Shinmun was recorded as Jinjosa, Jogongsa. But this was only reflected words by Japanese hierarchy, because Shilla kings during 8 centuries as well as king Munmoo and king Shinmun conveyed their opinions verbally to Japan. The Shilla envoys received regalement in Skusi since in 679, and this was different one from Jogong in royal city. And goods of Jomool and Byeolhyeonmool were not same compared to goods to China and king Munmoo installed(chaekbong) Anseung and took Jogong from Tamla. These and king Munmoo with the tale of patriotism showed that Shilla had unfriendly relation with Japan. In Jogong-Chekbong relation of outdated East Asian society, passive Jogong country sent Byeolheonmool to Jogong country. Goods from Emperor of Tang dynasty to king Wonseong and king Kyeongmun showed this, and it was asked by Shilla. Byeolheonmool from Shilla to Japan also was probably asked by Japan, and Shilla regarded Beon-guk Japan by Byeolheonmool because they resisted the order of world surrounded by Tang. But Shilla could not regarded Beon-guk Japan since Shilla was threated by Tang. So Shilla often dispatched envoys to Japan and provided goods asked by Japan. This twofold attitude during king Munmoo and king Shinmun was shown in dealing with Tang and Bodeok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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