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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조선의대일 전략(對日 戰略) -1593년 일본군의 한성 퇴각을 중심으로-

The Anti-Japanese Strategy of Chosǒn during the Imjin War (1592-1598) -The Case of the Japanese Withdrawal in May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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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과 일본의 강화협상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1594년 4月 일본군은 한성을 벗어나 남해안으로 철수했지만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지역의 일부를 기지화 하며 장기 주둔의 가능성을 보였다. 명군은 강화협상을 통해 왕자 송환 문제를 해결하고 임진강에서 교착 상태를 푸는 방법을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설정했다. 따라서 조선군의 교전을 금지해 철수하는 일본군을 자극하지 않되 적절한 수준의 견제로 일본군에 대하여 합의 이행을 보장받으려는 양면 전략을 구사했다. 한편, 강화협상에서 배제된 조선으로서는 자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서 일본군이 한성으로 퇴각하기 이전이나 퇴각한 직후에 궤멸시키는 전략이 최선이었다. 따라서 조선은 명군의 증파 및 합동 작전을 통한 신속한 타격으로 적을 격멸할 것을 명군에 지속적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주전론을 고수함으로써 일본과의 강화협상에 집중하는 명군과 갈등을 빚기 보다는 조명 군사 협력의 구도에서 사안・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주전론을 재구성하고 필요 시 단독 작전도 수행하면서 독자적인 對일 전략을 추구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주전론은 단순히 조선의 對일 전략일 뿐 아니라 명의 對조선 전략 그리고 명의 對일 전략과 역동적으로 대립하고 교차하는 또 하나의 전장(戰場)이었다고 할 것이다.

Abstract

This article charts how Chosǒn pursued an anti-Japanese strategy after the retreat of the Japanese armies from Seoul in May 1593. As for the Ming armies, the most practical method of breaking the deadlock of the battle front along the Imjin River in the first quarter of 1593 was a successful negotiation through which to let the Japanese armies in Seoul withdraw from the central part of Chosǒn. For this purpose, the Ming armies prevented its partner Chosǒn armies from chasing the enemies on the run. At the same time, the Ming armies temporarily deployed the newly dispatched troops only in the southern part of Chosǒn against a possible re-invasion by the Japanese armies after a rupture of the negotiation. As opposed to this two-track strategy, the Chosǒn court argued vehemently and yet logically against the Ming- Japan negotiation while persistently asking the Ming armies for a rapid military reinforcement in order to attack the retreating Japanese armies. And, the Chosǒn armies started conducting independent operations, if locally and on a small scale, against the Japanese armies in the southern part of their territory. With focus on the Chosǒn’s anti- Japanese strategy as above, this study will not only offer an insight into the coexistence of cooperation and conflict in the Chosǒn-Ming military alliance against their common enemy, but also deepen our understanding of the Imjin War, o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as an international war in East 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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