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베트남 전쟁 공공기억과 민간기억의 담론 갈등: 집단기억의 등장 및 변화의 정치적 동인
Vietnam War Memory Conflict Between Public Collective Memory and Private Collective Memory in Korea : Political Factors Behind the Emergence and Change of Collective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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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전쟁과 관련된 공공기억과 민간기억은 왜 불일치할까? 본 연구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민간인 학살에 대한 문제가 1999년 국내 시민단체에 의해 제기되면서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기억의 균열이 발생하는 과정에 대하여 정치적인 분석을 시도한다. 국민을 결집시키기위해 선별된 기억을 각국의 역사에 위치시키는 과정 속에서 누락되거나 배제되었던 기억은 서서히 균열을 발생시켰다. 1990년대 전쟁기억의 균열과 관련하여 본 연구는 ‘시민단체’라는 새로운 기억주창자(memory entrepreneur)의 등장에 주목한다. 본 연구는 기억의 구성 체계를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공기억과 민간기억 사이에서 발생하는 역학관계에 대하여 정치학적 시각을 제공한다.
Abstract
Why are war-related public collective memory and private collective memory inconsistent? This study attempts a political analysis of the process of memory competence surrounding the Vietnam War, as the issue of the massacre of Vietnamese civilians by the Korean military was raised by domestic civic groups in 1999. Memories that were omitted or excluded in the process of placing memories in the history of each country gradually created cracks. Regarding the crack in war memories in the 1990s, this study focuses on the emergence of a new memory entrepreneur called ‘civic group’. This study proposes a structure of memory, and based on this, provides a political perspective on the dynamics that occur between public collective memory and private collective mem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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