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삼국사기' 불교관련 기사 存疑 6세기 '삼국사기' 불교관련 기사 存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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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는 '삼국사기'의 내용 가운데 6세기 불교와 관련된 기사에 관한 연구이다. 이 기사는 대부분 신라에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6세기 삼국에서 해외로 보낸 유학승 수는 비슷하며, 다른 기록들, 즉 '해동고승전'이나 '일본서기'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불교에 관한 기사가 다수 보이고 있다. 그러나 김부식의 서술에서는 이와 같은 자료들이 생략되어 있다. 필자는 본 연구에서 김부식의 역사서술에서 보이는 사료선택의 문제점과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첫째로 6세기 이전의 기사와 다르게 부각된 내용은, 법흥왕 대부터 나오는 왕을 장사지낸 기록이다. 김부식이 왕릉을 사찰로 방향을 표시한 기사이다. 이는 사찰이 왕릉을 수호하는 능사로서의 역할에 주목한 것이라 생각된다. 둘째로 김부식은 팔관회는 본기에 정확히 수록하였으나, 같은 호국법회로 알려진 백좌강회는 열전에 명칭만 기재하였다. 때문에 진흥왕대에 최초로 개설된 백좌강회는 그 개최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그 이유는 백좌강회가 황룡사 낙성법회에 개최된 까닭에 열전으로 밀렸고, 호국과 관련이 있는 팔관회만 본기에 수록한 것으로 보았다. 셋째 진평왕대 안홍의 귀국을 진흥왕 37년인 576년 기사로 다루고 있고, 진흥왕대에 원광이 진에 들어간 유학 기사가 너무도 윤색이 심하여 이를 바로 잡아 보았다. 즉 김부식은 안함이 당에서 625년에 귀국하였다는 최치원의 주장과는 달리, 수나라는 살리면서 진흥왕대의 기사로 만든 것을 검토해 보았다. 또한 원광의 경우, 김부식은 그가 유학을 배우러 진나라에 갔다가 불교로 전향하여 승려가 된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이러한 杜撰을 하였다고 보았다.
Abstract
This article is the research on the Records relating to 6 century Buddhism among the content of 'SamKukSaGi'. This Records related mostly to Shilla. However, the number of Three countries native monk studying abroad shows up analogously in 6 century. This fact is verifiable by other registers, that is, 'HaeDongGoSeungJeun' and 'IlBonSeoGi' that there are the records about the Buddhism of Goguryo and BaeckJae. But, in the description of Kimbusik, this kind of contents are omitted. In this article, as follows, I arranged the problem and the reason to be seen among the materials that Kimbusik chose for description of the history. First, the difference of the records between before and after 6 century shown up is the records about the funeral of the king initiated from the King Beopheung. Gimbusik gave the position mark of the royal tomb the direction of the temple with the standard. This pays attention to the role that the temple keeps the royal tombs to one. Second, Kimbusik included PalGuanHui in this BonGi accurately. However, the BackChuaGangHui known as the defense of one's country same kind of the Buddhist ceremony described only the name in then Lives. Therefore, as to the BackChuaGangHui established in the time of king Chinhung for the first time, this holding time was not clear. I saw the reason that BackChuaGangHui is the opened to celebrate the inauguration ceremony for the completion of HwangRyong temple, so it was included in the Lives, but PalGuanHui that was the ceremony of the Buddhism related with the country defence included in BonGi. Thirdly, it is the distortion about the record of AnHong‘s homecoming time and WonGuang's achievements. Anhong came back from Dang in 625. However, Kimbusik recorded this fact happened the time of King Chinhung. As to this, the fact and register is the task which doesn't fit. Also Kimbusik excluded the fact that Won-Gwang went to Qin Dynasty in order to learn Confucianism, and he converted to Buddhism and became Buddhist monk in the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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