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간 『금등』의 문헌적 성격과 사상사적 의의
淸華簡『金縢』の文獻的性格とその思想史的意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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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淸華大學藏戰國竹簡 『金縢』을 현행본 『尙書』 「金縢」을 비롯한 관련 자료와의 비교 분석을 통해 그 문헌적 성격과 사상사적 의의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청화간 『금등』은 2010년 12월 李學勤 주편, 『淸華大學藏戰國竹簡(壹)』에 수록되어 그 내용이 공개되었다. 청화간 『금등』은 총 14매의 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완전한 죽간의 길이는 약 45cm다. 그리고 제14호간의 뒷면 하단에 편명이 「周武王又疾周公所自弋王之志」라고 서사되어 있다. 비록 편명은 다르지만 전체 내용이 현행본 『상서』 「금등」과 대체로 일치하고 있다. 청화간 『금등』은 현행본 「금등」과 비교하여 내용 구성 면에서 몇 가지 차이점을 보인다. 현행본 「금등」이 ①무왕이 병에 걸리자 주공이 무왕을 대신하겠다는 취지를 하늘에 알리고 점을 친 후 자신의 기도문을 금등의 궤에 넣고 보관하자 무왕의 병이 낫는다, ②무왕이 세상을 떠난 후 관숙 등의 반란이 일어나자 주공이 동방 지역에 거하며 「鴟鴞」의 시를 지어 바쳐 성왕에게 충심을 증명하고자 한다, ③대풍과 대우에 의한 재해에 금등의 궤를 열어 비로소 성왕이 주공의 충심을 알게 된다는 3가지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으며, ①과 ②, ③의 스토리는 “王翼日乃瘳”라는 문장에 의해 완전히 분리된다. 그러나 청화간 『금등』에는 이 구절이 없으며 따라서 ①~③의 스토리는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스토리로 연결된다. 이 점을 통해 청화간 『금등』에서 현행본 『금등』, 『사기』 「노주공세가」의 주공설화로 연결되는 문헌적 변천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청화간 『금등』의 편명이 「周武王又疾周公所自弋王之志」라는 점, 기타 청화간의 『상서』 관련 문헌들의 편명을 통해 「書序」의 편찬자가 공자가 아니며, 그 편찬시기가 전국시대가 아니었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다. “周公居東” 기간이 현행본 「금등」에는 2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의미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들이 주장되어 왔다. 이들 주장은 크게 ‘거동’을 ‘주공이 동쪽 지역을 정벌한 것’으로 보는 것과 ‘주공이 동쪽 지역으로 피한 것’으로 보는 견해로 정리할 수 있다. 청화간 『금등』에는 “周公居東” 시기가 3년으로 되어 있어서 주공이 동쪽에 거했다는 문장의 의미가 단순히 동쪽에 거했다거나 망명했다는 것이 아니라, 동쪽 지역(무경의 반란)을 정벌한 것임을 확정할 수 있다. 그러나 후대에 2년으로 하는 텍스트가 널리 인정받으면서, 그 해석을 놓고 사상사적으로 다양한 견해가 전개되게 된다.
Abstract
本稿は淸華大學藏戰國竹簡『金縢』を、現行本『尙書』金縢篇をはじめとする関連資料との比較分析を通じて、その文獻的性格と思想史的意義を究明するものである。淸華簡『金縢』は、二〇一〇年十二月、李學勤主編『淸華大學藏戰國竹簡(壹)』に収録され、その内容が公開されている。淸華簡『金縢』は總十四枚の竹簡からなっており、完整な竹簡の長さは約45cmある。そして、第十四號簡背面の下段に「周武王又疾周公所自弋王之志」と篇題が書寫されている。篇題は異なるものの、大体の內容は現行本『尙書』「金縢」と一致している。淸華簡『金縢』を現行本金縢篇に比べると、その構成の側面に注目すべき違いがある。現行本金縢篇には以下のような三つの物語が含まれている。①武王が病気になると周公が武王の身代わりになりたいという册書を金縢の櫃の中に納める。すると武王の病気が治る、②武王がなくなり管叔らが謀反をおこすと、周公は東方におり「鴟鴞」の詩を作って成王に真心を知らせようとする、③大風と大雨という災害のため金縢の櫃を開けると、はじめて成王が周公の忠心を知るようになる。その①と②③の物語は「王は翼日乃ち瘳ゆ」という文によって完全に分れる。しかし、淸華簡『金縢』にはこの文がなく、したがって①~③は分れることなく一つのストーリとして成立する。このことを通じて周公說話が淸華簡『金縢』から現行本『金縢』、さらに『史記』「魯周公世家」へと變化していく過程を確認することができる。そして、淸華簡『金縢』の篇題が「周武王又疾周公所自弋王之志」ということと、ほかの淸華簡の『尙書』關聯文獻の篇題によって、「書序」を編纂したのは孔子ではなく、その編纂時期も戰國時代より下るということも推察することができる。なお、「周公居東」の期間が現行本金縢篇には二年と書いてあるので、その意味についてこれまで様々な意見が出されてきた。これらの説は、大きく分けて①「居東」を「周公が東の地域を征伐した」とする説と、「周公が東の地域に避けていった」とする説にまとめられる。ところが、淸華簡『金縢』には「周公居東三年」と書かれているので、この文章の意味はただ東に居た、あるいは亡命したなどではなくて、東より起こった謀反を討伐したということである。しかし、後代には二年にするテキストが広く勢力を得、その解釈をめぐって思想史的に多樣な見解が展開され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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