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장왕대 고구려의 대당관계 변화와 그 배경
The changes and background of Koguryo(高句麗)-Tang(唐) relations during the reign of King Bojang(寶藏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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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보장왕대 고구려의 대당관계는 안팎의 정세와 연동하며 小康과 反轉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변화과정을 고려할 때, 양국관계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보장왕대 전기(642649), 고구려의 대당관계는 신라문제로 촉발된 양국의 갈등이 高句麗∙唐戰爭으로 비화되었다. 연개소문은 정변을 통해 집권하였으며 자신의 일족을 중심으로 독재체제를 구축해나갔다. 이와 함께 대당온건책을 통해 보장왕의 책봉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 태종은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대외팽창정책을 추진하였으며 신속시켜야 할 대상으로 고구려가 설정됨으로써 대고구려원정은 정당화되었다. 특히 신라의 請兵外交는 양국관계가 전쟁으로 비화되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보장왕 중기(649~658), 고구려의 대당관계는 당 태종의 죽음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당 내부의 모반사건과 황후교체사건이 잇달았으며 서돌궐 阿史那賀魯의 반란 등으로 양국관계는 소강상태에 있었다. 아울러 이 시기 국제관계는 고구려∙백제 대 신라∙당의 대립구도로 고착화되었다. 보장왕 후기(658~668), 고구려의 대당관계는 당의 내부갈등이 마무리되고, 아사나하로의 반란도 진압되면서 양국간 마찰로 이어졌다. 양국관계는 당이 백제를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고구려를 압박하였지만 철륵의 침입과 토욕혼∙토번의 전쟁으로 고구려원정에 나섰던 지휘관이 차출되면서 잠시 소강국면을 맞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 연개소문 정변 이후, 연씨세력 대 反연씨세력이라는 정국구도는 독재정권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체제를 이탈하는 세력과‘포스트 연개소문’을 염두에 둔 연씨세력의 분화현상이 점차 두드러져 갔다. 고구려의 정국불안은 665년 연개소문의 죽음과 함께 연씨형제들간 내분으로 치닫고 말았다. 그 결과, 고구려는 내분을 틈탄 신라∙당연합군의 침입을 맞아 멸망하였다.
Abstract
Koguryo-Tang relations during the reign of King Bojang was dynamic with a lot of changes in accordance with domestic and foreign circumstances. I wish to study the occasion and background which brought about these changes. The reign of King Bojang of Koguryo will be divided into three periods in consideration of the reigning Tang emperors. Chapter two discusses Koguryo-Tang relations during the early period of King Bojang’ s reign. Yeongaesomun(淵蓋蘇文) assassinated King Yeongryu(榮留王) in A.D. 642 and seized power through a coup, imposing one-man rule. Koguryo adopted a moderate policy toward the Tang which resulted in the investiture of King Bojang from Tang. However, with Silla’s request for a dispatch of troops from the Tang, Koguryo-Tang relations worsened, resulting in Tang Tai-tsung(太宗)’s invasion of Koguryo on the pretext of the king’s assassination in A.D. 645. Koguryo also took a hard-line policy toward the Tang. Chapter three examines Koguryo-Tang relations during the middle term of King Bojang’s reign. After Tang Gaozong(高宗) succeeded to the throne, relations with Koguryo entered a new phase. Tang fell into internal and external confusion resulting from rebellion and the change of the Empress Wu. This caused Koguryo-Tang relations to come to a lull for several years. Chapter four studies Koguryo-Tang relations during the latter term of King Bojang’s reign. Silla(新羅) joined hands with Tang to destroy Baekjae(百濟) in A.D. 660. Koguryo fell into internal confusion after Yeongaesomun’s death in A.D. 665. As a result, Koguryo was destroyed by the allied Silla-Tang forces in A.D. 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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