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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연개소문의 대백제·신라정책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policy against Baekje and Silla of Yeongaesomun in Kogur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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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이후부터 상호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던 고구려와 백제는 연개소문이 집권한 이후부터 그 관계가 급격하게 변화하였다. 연개소문이 집권한 이후에 전개하였던 대백제정책의 중요 내용은 和親정책의 추진이었다. 그 결과 고구려와 백제는 ‘麗․濟連和說’을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군사적인 연합(또는 동맹)과 같은 형태의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여․제연화설’에 대해서는 고구려와 백제의 화친의 내용과 성격에 따라 긍정론과 부정론, 그리고 한계론과 양단책론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제연화설’은 긍정론과 함께 어느 정도의 일정한 한계론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연개소문은 집권한 이후에 신라에 대해서 강경정책을 추진하였다. 김춘추가 請兵을 목적으로 고구려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연개소문은 죽령 이북의 땅에 대한 반환을 요구하며 김춘추의 청병 요청을 사실상 거절하였다. 연개소문에 의해 결렬된 김춘추의 청병외교는 이후 두 나라 사이에 서로 상반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과적으로 당과 대결하기 전에 신라와의 관계개선이 필요하였지만, 오히려 적대관계로 변하게 된 것이 대신라정책의 한계였다. 연개소문의 대백제․신라정책은 당과의 대립관계에서 당과의 대결에 집중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政變으로 어지러워진 내정을 정비하여 당과의 대결에 집중하려던 것이 연개소문의 정책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당과의 계속되는 대립관계에서 확실한 동맹국이 없이 단독으로 상대하다가 내부의 분열로 멸망하였다. 결국 당과의 대립관계에 있었던 고구려는 백제나 신라와의 관계를 개선하지 못한 것이 한계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Abstract

Having maintained hostile relations since the sixth century, Koguryo and Baekje went through a rapid change after Yeongaesomun came to power. Significant contents of inter-Baekje developed after Yeongaesomun’s seizing power was the promotion of amity policy. As a consequence, Koguryo and Baekje came to form a relation like a form of military union(or alliance) based on ‘theory of flexible harmony of Koguryo and Baekje(麗․濟連和說)’. After coming to power, Yeongaesomun pushed forward a hard-line policy to Silla. Kim, Chun-chu was dispatched as an envoy to Koguryo for the purpose of asking for military support, but Yeongaesomun demanded Silla to return the land north of Jukryeong(竹嶺) Silla occupied and actually refused Kim, Chun-chu’s request of military support. Chun-chu’s diplomacy requesting military support ruptured by Yeongaesomun resulted in contradictory results to both countries. Eventually, its limit of inter-Silla policy was that it needed improvement of relations with Silla before confronting Tang(唐), but it underwent hostile relations. Yeongaesomun’s Policy for Baekje and Silla can be said to be one strategy to concentrate on confrontation to Tang in the antagonistic relationship with Tang. Yeongaesomun’s Policy intended to put internal situation disordered due to political upheaval in place and focus on confrontation to Tang. However, Koguryo singly fought with Tang without any allied country in a continuing antagonistic relationship with Tang and collapsed due to internal discord. Finally, Koguryo being in antagonistic relationship with Tang can be said to have a limit not to improve relationship with Baekje or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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