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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양국의 동향

Trends between the two countries immediately after the Goguryeo–Táng War of 661–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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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661~662년 고구려-당 전쟁 직후 고구려와 당 양국의 동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당은 오랜 기간 동안 수천 척의 함선을 건조하는 등 전쟁 준비를 철저히 하고, 백제를 멸망시킨 여세를 몰아 고구려와 전쟁을 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병력과 함선을 상실하고, 대총관급 지휘관들이 사망(혹은 전사)하는 참패로 종결되었다. 당은패전의 여파로 인해 대내외적으로 이전 왕조인 수에 비견될 정도로 어려운 정국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고종은663년 8월 27일에 고구려와의 전쟁 재개를 위한 대규모 함선 건조를 전면 철폐하고 내치 안정에 주력하였다. 현실적으로 당의 해로를 통한 고구려와의 전쟁 재개는 사실상 포기 단계에 이른 것이다. 고구려는 당과의 전쟁에서 승전하였다. 전쟁 직후 고구려의 실권자였던 연개소문은 전쟁 직후 왜와 함께 백제부흥군을 지원하였으나, 결국 백제의 부흥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대신에 연개소문은 전쟁 직후 당이 철륵 전선에집중한 사이 당의 육로를 통한 전쟁 재개 가능성을 고려하여 요서 지역에 진출하여 영향력을 한층 강화한 것으로보인다. 이는 육로를 통한 당의 공격 재개 가능성을 억제한 것이다. 663년 당 고종의 고구려와의 전쟁 중지 선언은 패전으로 인한 당의 곤란한 대내외정국과 고구려의 요서 진출에서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요컨대 661~662 년 고구려-당 전쟁은 고구려가 승리하면서 당의 고구려 멸망 야욕을 포기단계에 이르게 하고, 관계개선을 유도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적지 않을 것이다.

Abstract

In this paper, we looked at the trends of both Goguryeo and Tang immediately after the Goguryeo-Táng War of 661–662. The Táng Dynasty thoroughly prepared for the war by building thousands of ships for a long time, and fought against Goguryeo by driving the momentum of the collapse of Baekje. However, it ended in a crushing defeat in which numerous troops and ships were lost, and commanders at the rank of Grand Commander were killed (or killed). Due to the aftermath of the defeat, the Táng Dynasty was faced with a political situation comparable to that of the previous Suí Dynasty, both internally and externally. In the end, Táng Gāozōng of the Táng Dynasty stopped the construction of large-scale ships to resume the war with Goguryeo on August 27, 663, and focused on internal stability. In reality, the resumption of the war with Goguryeo through the Táng Dynasty's sea route has virtually reached the stage of giving up. Goguryeo won the war against Táng. Immediately after the war, Yeon Gaesomun, the ruler of Goguryeo, supported the Baekje Revival Army with the Japan, but eventually the revival of Baekje resulted in a failure. Instead, Yeon Gaesomun seems to have further strengthened its influence on the Khitan by calculating the possibility of resuming the war through the Táng's land route while the party focused on the Töles Front immediately after the war. This restrained the possibility of resuming attacks by the Táng Dynasty via land. Táng gāozōng's declaration of suspension of the war with Goguryeo in 663 is believed to have resulted from the Tang's internal and external difficulties caused by the defeat and Goguryeo's entry into the Liáoxī region. In short, the Goguryeo-Táng War between 661 and 662 would be significant in that Goguryeo won, leading the Táng to give up its ambition to destroy Goguryeo and inducing improvement in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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