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후반~8세기 전반 신라 찬술문헌의 생산 과정
Production Process of Literature Written by Silla Monks from the late 7th to early 8th century
0
조회
0
다운로드
1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에서는 7세기 후반 이후부터 8세기 전반 사이에 신라의 학승들이 찬술한 문헌들이 ‘물품’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해보았다. 추론의 결과만 간략히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신라에서의 주석서 찬술 작업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국가 차원에서 입수한 불교문헌들을 보관ㆍ관리하면서 필요한 이들이 열람할 수 있었을 것이다. 관립 사경소에서 수집한 찬술문헌들을 필사하였는데, 사경소는 황룡사에 있었고 찬술문헌을 수집하여 관리하고 필사하는 일련의 과정을 담당한 관부 책임자는 대서성이었다고 추론하였다. 전쟁이 종식된 후 불교계 지도자가 국정 운영에 미치는 영향력은 차츰 줄어들었다. 하지만 불교계는 문무왕 주도의 도성 재생 공사에 건축 기술과 자재를 제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본연의 업무인 불법 연구에 몰두하여 직접 주석서를 찬술하기에 이른다. 찬술과 강의를 통해 불교계 지도자들은 신라인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신라 찬술문헌이라는 ‘물품’은 당을 거쳐 돈황에까지, 그리고 일본에 전해져 동아시아 불교 교학의 성숙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Abstract
In this article, I traced the process by which Buddhist Literatures written by Silla monks became an ‘item’ from the late 7th century to the early 8th century. A brief summary of the results of the inference is as follows. In Silla, there was a system in place to publicly store and manage Buddhist literature obtained at the national level and allow those who needed it to view it. Additionally, there were many people who had the ability to read and independently interpret Buddhist Literatures. He would have copied the literary works collected by the government- established Buddhist scriptures office. The Buddhist scriptures office was probably located at Hwangnyongsa Temple. The person in charge of the government department, who was in charge of the series of processes of collecting, managing, and transcribing Literatures, would have been Dae Seo-seong(大書省). After the war ended, Buddhist leaders delivered necessary messages to the Silla people through their writings and lectures. The ‘item’ called the Silla commentary was passed down through the Tang Dynasty to Dunhuang and then to Japan, playing an important role in the maturation of East Asian Buddhist teachings.
참고문헌 (84)
- "삼국사기", ~
- "삼국유사", ~
- "해동고승전", ~
- "開元釋敎錄", ~
- 강봉룡, "신라의 승관제와 지방지배", 전남사학, 11 (1997)
- 고현정, "신라 문무왕대의 曆法 改用과 義鳳曆", 석사, 한국사학과, pp.2013
- 곽뢰, "7~8세기 唐代 譯經場의 체계와 新羅學僧", 동국사학, (48), pp.161~206 (2010), 동국역사문화연구소[DOI]
- 권인한, "목간을 통해서 본 신라 사경소의 풍경", 진단학보, (119), pp.197~217 (2013), 진단학회
- 김복순, "8ㆍ9세기 신라 瑜伽系 佛敎", 한국고대사연구, 6 (1993)
- 김복순, "신라 중대의 불교", 신라문화, (25), pp.167~188 (2005), 신라문화연구소
- 김복순, "신라 왕경 사찰의 분포와 체계", 신라문화제학술발표논문집, 27 (2006)
- 김상현, "『추동기』와 그 이본 『화엄경문답』", 한국학보, 22(3) (1996)
- 김영미, "신라 中古期 三綱制의 시행과 그 기능 -慈藏의 활동과 관련하여-", 한국고대사연구, (72), pp.225~260 (2013), 한국고대사학회
- 김영태, "한국불교찬술문헌총록",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 (1976)
- 김은정, "唐代 譯經事業과 監護", 역사문화연구, (76), pp.161~198 (2020), 역사문화연구소[DOI]
- 김지연, "『석마하연론(釋摩訶衍論)』의 주요 내용과 특징", 불교철학, 6, pp.167~190 (2020), 세계불교학연구소
- 김천학, "원홍은 신라승려인가? - 『법화경론자주』의 인용문헌을 중심으로 -", 동아시아불교문화, (17), pp.185~208 (2014),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 김천학, "쇼묘지(稱名寺) 소장·가나자와(金澤)문고 관리 원효 『기신론별기』의 기초연구", 한국사상사학, (56), pp.245~276 (2017), 한국사상사학회[DOI]
- 김천학, "한국찬술불교문헌의 확장성에 대한 일고찰 - 태현의 『보살계본종요』를 중심으로 -", 서지학연구, (70), pp.203~225 (2017), 한국서지학회[DOI]
- 김천학, "테마 한국불교 9" (2021), 동국대출판부
- 남동신, "신라의 승정기구와 승정제도", 한국고대사논총, 9 (2000)
- 남풍현, "이두연구" (2000), 태학사
- 남풍현, "東大寺 所藏 新羅華嚴經寫經과 그 釋讀口訣에 대하여", 구결연구, (30), pp.53~79 (2013), 구결학회[DOI]
- Tong, Bo, "신라승려의 입당 교류활동과 그 의의 - 당의 불교발전에 대한 공헌을 중심으로 -", Journal of China Studies, 19(1), pp.51~69 (2016), 중국연구소[DOI]
- 리송재, "동아시아 불교 서사문화와 통일신라 사경", 석당논총, (58), pp.1~32 (2014), 석당학술원[DOI]
- 문명대, "신라 법상종(유가종)의 성립문제와 그 미술(하)", 역사학보, 63 (1974)
- 문명대, "신라 신인종의 연구-신라 밀교와 통일신라사회", 진단학보, 41 (1976)
- 민영규, "백성욱박사송수기념불교학논문집" (1959), 백성욱박사송수기념사업위원회
- 박광연, "원광(圓光)의 점찰법회(占察法會) 시행과 그 의미", 역사와 현실, (43), pp.111~140 (2002), 한국역사연구회
- 박광연, "『法華經論述記』의 構成과 話者", 이화사학연구, (37), pp.183~208 (2008), 이화사학연구소[DOI]
- 박광연, "신라 법화사상사 연구" (2013), 혜안
- 박광연, "신라의 불교 교단과 ‘종파’ - 신라 중대 종파 성립설에 대한 고찰 -", 사학연구, (125), pp.165~196 (2017), 한국사학회
- 박광연, "「황복사지 삼층석탑 금동사리함」 명문을 통해 본 신라 중대의 불교", 한국고대사연구, (111), pp.193~222 (2023), 한국고대사학회[DOI]
- 박광연, "당과 신라의 변화관음 수용", 한국학논집, (92), pp.5~36 (2023), 한국학연구원[DOI]
- 박인석, "『유가론기(瑜伽論記)』에 나타난 혜경(惠景)의 사상경향 분석 ―「五識身相應地」와「 意地」의 주석을 중심으로", 불교학연구, 39, pp.175~214 (2014), 불교학연구회[DOI]
- 박인석, "『유가론기(瑜伽論記)』의 연구 현황과 과제", 한국사상사학, (50), pp.255~286 (2015), 한국사상사학회
- 박인석, "『유가론기』의 신라인법사(新羅因法師)와 신라국법사(新羅國法師) 연구", 불교학연구, 56, pp.147~173 (2018), 불교학연구회[DOI]
- 박인석, "『유가론기(瑜伽論記)』의 달사(達師) 연구", 범한철학, 94(3), pp.49~78 (2019), 범한철학회[DOI]
- 박인석, "『유가론기』에 나타난 경사(景師)의 공(空) 이해의 특징", 한국불교학, (96), pp.65~95 (2020), 한국불교학회
- 박지선, "고대 사경지 제작에 관한 연구", 서지학연구, (56), pp.499~520 (2013), 한국서지학회[DOI]
- 배현숙, "고려시대의 비서성", 도서관학논집, 7 (1980)
- 백진순, "『유가론기(瑜伽論記)』에 나타난 신라현법사(新羅玄法師)에 대한 연구 -「섭결택분」의 성문지・보살지를 중심으로", 불교학연구, 52, pp.111~140 (2017), 불교학연구회[DOI]
- 사카에하라 토와오, "정창원문서 입문" (2012), 태학사
- 이시즈카하루미치, "正倉院本 중의 新羅寫經", 구결연구, (20), pp.29~44 (2008), 구결학회[DOI]
- 신선혜, "新羅 中古期 불교계의 동향과 僧政", 韓國史學報, (25), pp.85~119 (2006), 고려사학회
- 양정석, "한국 고대 정전의 계보와 도성제" (2018), 서경
- 여호규, "6~8세기 신라 왕궁의 구조와 정무·의례 공간의 분화", 역사와 현실, (94), pp.33~74 (2014), 한국역사연구회
- 여호규, "삼국통일 전후 신라 도성의 공간 구조 변화", 역사비평, (128), pp.240~268 (2019), 역사문제연구소[DOI]
- 윤선태, "정창원 소장"신라촌락문서"의 작성연대-일본의"화엄경론"유통상황을 중심으로", 진단학보, 80 (1995)
- 이수훈, "신라 승관제의 성립과 기능", 부대사학, 14 (1990)
- 이연승, "중국의 고대 역법의 사상적 특징과 문화적 의미", 중국과 중국학, 1 (2003)
- 이현숙, "신라 의학의 국제성과 의약교류", 백산학보, (83), pp.269~295 (2009), 백산학회
- 이홍직, "백성욱박사송수기념불교학논문집" (1959)
- 이홍직, "한국고대사의 연구" (1971), 신구문화사
- 정병삼, "고대 한국과 일본의 불교교류", 한국고대사연구, 27, pp.111~140 (2002), 한국고대사학회
- 정여선, "황룡사 회랑외곽의 공간구조 검토", 신라문화, 57, pp.35~62 (2020), 신라문화연구소[DOI]
- 정재영, "新羅 寫經에 대한 硏究", 구결연구, (33), pp.97~131 (2014), 구결학회[DOI]
- 채상식, "한국 중세불교의 이해방향", 고고역사학지, 9 (1993)
- 채인환, "신방(神昉)과 신라 지장예참교법(地藏禮懺敎法)", 한국불교학, 8 (1983)
- 최민희, "「의봉4년개토」 글씨기와를 통해본 신라의 삼국통일의식과 통일기년", 경주사학, 21 (2002)
- 최병현, "경주 월성과 신라 왕성체제의 변천", 한국고고학보, (98), pp.48~91 (2016), 한국고고학회
- 최연식, "8세기 중엽 日本의 新羅 華嚴學 受容과 『華嚴(經)文義要決問答』", 구결연구, (23), pp.111~136 (2009), 구결학회[DOI]
- 최연식, "7-9세기 신라와 일본의 불교교류에대한 연구동향 검토", 불교학리뷰, (8), pp.9~41 (2010), 불교문화연구소[DOI]
- 최영성, "新羅 鍪藏寺碑의 書者 硏究", 신라사학보, (20), pp.179~218 (2010), 신라사학회
- 최재석, "8세기 日本의 佛經 수입과 統一新羅", 한국학보, 22(2) (1996)
- 최재석, "고대한일관계사 연구 비판" (2010), 경인문화사
- 최재석, "고대한일관계사연구" (2010), 경인문화사
- 江田俊雄, "新羅の遁倫と倫記所引の唐代諸家", 宗敎硏究, 11(3) (1934)
- 堀紙春峰, "華嚴經講說よりまた良弁と審祥", 南都佛敎, 31 (1973)
- 堀紙春峰, "南都佛敎の硏究" (1980), 法藏舘
- 東國大學校 佛敎文化硏究所, "韓國佛書解題辭典" (1982), 國書刊行會
- 日本佛教各宗の新羅·高麗·李朝佛教認識に關する研究, 第1卷, "福士慈稔", 身延山大學, ~ (2010)
- 日本佛教各宗の新羅·高麗·李朝佛教認識に關する研究, 第2卷上, "福士慈稔", 身延山大學, ~ (2011)
- 日本佛教各宗の新羅·高麗·李朝佛教認識に關する研究, 第2卷下, "福士慈稔", 身延山大學, ~ (2012)
- 日本佛教各宗の新羅·高麗·李朝佛教認識に關する研究, 第3卷, "福士慈稔", 身延山大學, ~ (2013)
- 山本信吉, "日本における新羅写経の発見と古代日本 ․ 朝鮮写経", 서지학보, (39), pp.45~75 (2012), 한국서지학회1[DOI]
- 石田茂作, "(寫經より見たる)奈良朝佛敎の硏究", 東洋文庫 (1966)
- 石井公成, "三論敎學の硏究" (1990), 春秋社
- 細井浩志, "仏教文明と世俗秩序-国家ㆍ社会ㆍ聖地の形成" (2015), 勉誠出版
- 勝又俊敎, "瑜伽論記に関する二三の問題", 佛教研究, 2(4) (1938)
- 王招國, "敦煌遺書所見新羅義寂『菩薩戒本疏』寫本考述 —兼論新羅圓測著作對敦煌佛教的影響—", 불교학보, (82), pp.31~54 (2018), 불교문화연구원[DOI]
- 팅웬, "敦煌寫本より發見された新羅元曉の 著述について", 불교학리뷰, (7), pp.155~180 (2010), 불교문화연구소[DOI]
- 春日禮智, "新羅佛敎硏究" (1973), 山喜房佛書林
- 平岡定海, "新羅の審祥の教学について", 印度學佛敎學硏究, 40 (19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