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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希孟의 『 衿陽雜錄』 저술 의도와 ‘士’로서의 정체성

Reconsideration of Kang Hŭimaeng’s Kŭmyangjamnok: Agricultural Knowledge and the Identity of Lite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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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이 글은 농업사 연구와는 다른 관점에서 『금양잡록』을 읽어본 것이다. 그간 농업사 연구들은 『금양잡록』이 사찬 농서라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그 저술 의도는 대체로 일국사적인 관점에서 이해했다. 이 문헌은 국가의 농정을 보완하는 것이거나 일국사의 발전을 가리키는 합리적인 농업 발달의 지표로 중시되었다. 하지만 그렇게만 독해했을 때 해명되지 않는 지점들도 있다. 이 농서의 제명은 왜 『금양잡록』인가. 경험에 기초해서 기존 농법을 보완하려 했다면 강희맹의 관심은 어째서 금양별업에 한정되었는가. 그토록 중요한 업적을 어째서 그 누구도 강희맹의 일생에 관한 기록에 적지 않았는가. 농업 지식과는 무관해 보이는 내용이 책에 들어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글은 나름대로 이런 질문들에 대답해보려고 했다. 『『금양잡록』은 막연히 금양현을 염두에 두었다기보다 철저하게 금양별업이라는 장소를 전제로 작성된 텍스트다. 금양별업은 강희맹의 일상을 영위하는 중요한 기반이기도 했고, 처족으로부터 상속받은 선대의 터전이기도 했다. 가계의식이 투철했던 강희맹으로서는 금양별업을 경영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의 가계의식은 결코 同姓의 부계 혈족에 국한되지 않았다. 그런 강희맹으로서는 금양별업을 경영하는 위해서라도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채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희맹은 금양별업 경영을 전제로 농사를 중시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농정에 대한 정책적 기여로 확장하지는 않았다. 강희맹은 농사가 자신의 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철저하게 본인의 업이 ‘士’라는 정체성 위에서 농업을 바라보았다. 『금양잡록』에서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어디까지나 사로서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 보탬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금양잡록』은 기본적으로 금양별업 경영을 위한 ‘가내 농서’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강희맹은 그 토대 위에서 士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 책이 특별한 의미 없이 ‘잡록’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은 강희맹의 저술 의도가 소농 경영 안정화와 거리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Abstract

This paper takes an intellectual historical perspective to reinterpret Kŭmyangjamnok (The Miscellaneous Records of Kŭmyang), a book on agriculture written by Kang Hŭimaeng, a high-ranking official in the fifteenth-century Chosŏn dynasty. The research questions are as follows: Why was the book titled “jamnok” (miscellaneous records)? Why was Kang Hŭimaeng’s focus limited to the “Kŭmyang” region? Why does an agricultural book include knowledge unrelated to farming? This article argues that Kŭmyangjamnok is a text written entirely on the premise of the Kŭmyang Pyŏrŏp (special activities villa). Kŭmyang Pyŏrŏp was an important basis for Kang Hŭimaeng as it was his place of residence and an ancestral site he inherited from his wife’s family. As a person who valued his lineage, managing Kŭmyang Pyŏrŏp was naturally a priority for Kang Hŭimaeng. His perception of his lineage was not limited to the paternal lines of his clan, which differentiates him from the understanding of clans prevalent in the late Chosŏn dynasty. It was, therefore, inevitable for Kang Hŭimaeng to collect the necessary knowledge and information to manage Kŭmyang Pyŏrŏp. Despite his emphasis on farming for the management of Kŭmyang Pyŏrŏp, Kang Hŭimaeng did not extend his knowledge to contribute to improving agricultural policies. He did not believe that farming was his calling. Rather, he considered farming based on his firmly rooted identity as a “sa” (literati). For Kang Hŭimaeng, agricultural knowledge could only have significance under the premise of his identity as litera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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