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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에 반영된 효 인식

The Conception of Filiality to be reflected in the Sinjeung Dongguk Yeoji Seungram(『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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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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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년(중종 25)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이하 『동람』)의 효자편은 신라, 고려, 본조, 신증으로 분류하여 효자들의 이름과 효행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동람』의 신라 때 효자들은 모두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잘 봉양한 사례들이다. 고려 말에 이르면, 『주자가례』와 유교 윤리의 보급으로 부모 사후의 효행인 시묘가 확산되었다. 『동람』 효자편을 분석해 보면 1485년(성종 16) 초간 때에는 시묘(여묘) 행위가 많고, 1530년(중종 25) 신증할 때에는 부모 생시의 시병(간병) 사례가 많다. 『동람』 효자편을 보면 경상도는 부모 사후 시묘한 경우가 많고, 경상도 이외 지역은 부모 생시의 효행이 많다. 전라도 지역은 열녀가 많다. 경상도는 고려 말 안향, 정몽주, 이숭인, 길재 이래 유교 윤리가 일찍 보급되고 실천된 지역이었다. 경상도 각 군현은 일찍부터 유교화하여 향촌 사회의 지배층들이 『동람』의 편찬 취지에 잘 부응하였고, 『동람』 편찬을 위한 효자 정보 수집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충청도는 효자 선정에 매우 소극적이어서 효자 이름만을 기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역별로 효자편 설정의 중요성 인식이나 기준 적용의 차이로 인해 자료 수집의 양이 달라졌다. 『동람』에 수록된 효행 사례 중 노비들과 여성들의 경우 대부분은 부모가 병들거나 위기에 처하는 등 극한적 상황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를 베어 약으로 쓴다거나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부모를 구한 경우가 많았다. 『실록』에 의하면, 노비 등 천인에 대한 효행 정표는 중종 시기를 정점으로 하여 이후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들에게서는 효행보다는 열행을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삼강행실 효자도』(1432, 세종14)에 수록된 효녀 8명 가운데 4명이 성종 때 편찬된 『동람』에서는 열녀편에 수록되었다. 『동람』에는 신라 시대 불교적 효의 실천이 분명한 진정대사와 김대성의 사례는 제외되었다. 『동람』 편찬자들은 역대 효행 사례 중에서 유교적인 효행이 분명하거나 최소한 유교 윤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은 사례들을 모았다. 이에 따라 지나치게 불교적이고 전통적인 효행 사례는 의도적으로 빠뜨렸다. 『동람』의 초간과 신증 시기는 각각 축소 개편된 『삼강행실도』(1489, 성종 20)와 『속삼강행실도』(1514년, 중종 9)가 편찬된 시기와 가깝다. 이 책들에 실린 효행 기록은 일상생활 중에 실천한 사례보다는 시병ㆍ위난 등 특수한 상황에서 실천된 사례가 제법 많으며, 특히 부모 사후 효행의 비율이 높다.

Abstract

This study focuses on the 381 cases of filial sons recorded in the Sinjeung Dongguk Yeoji Seungram(『新增東國輿地勝覽』 ; Augmented survey of Korean geography). It first analyzes these cases in terms of periods, provinces, types of filial conducts, their objects, and official commendations; then it speculates on the question of how these records reflect changes in the conception of filiality in sixteenth-century Korea. The results of the analysis are as follows. In terms of periods, the early Joseon accounts for 79%, whereas Goryeo and Silla account for 20% and 1% respectively. Evidently this breakdown reflects the new dynasty's endeavor to proliferate the Confucian values by officially commending filial sons. On the other hand, filial conducts by Silla Buddhists(like Kim Daeseong who built Bulguksa and Seokguram) were conspicuously deleted. Among the eight provinces, the three southern provinces of Gyeongsang(40%), Jeolla and Chungcheong account for 70% of filial sons, whereas the three northern provinces of Pyeongan(8%), Hwanghae(6%), and Hamgyeong(2%) occupy merely 16%, and the two central provinces of Gyeonggi(10%) and Gangwon(4%) 14%. The uneven distribution of filial sons far surpass the breakdown of the population among the eight provinces, and it seems to suggest a much stronger Confucian influence in the south than in the north. In the sixteenth century, subtle changes occurred in the Korean conception of filiality. The two-year mourning at parent's grave became so commonplace that it was no longer officially commended. Instead, they emphasized filial piety while the parents were alive. A notable change also took place in the father/mother ratio. In the Goryeo period, mothers were more common objects of filial conducts than fathers; in the Joseon, it was by far reversed. These facts seem to indicate the prevalence of patriarchy. The ruling elite became quite complacent. From these facts, we can surmise that by the Confucian values were taking root in Korean society by the sixteenth century. The subsequent compilations of local gazetteers continued to underscore the filial conducts of their residents. And these paragons encouraged the Korean people to comply with the Confucian codes of behavior. Presumably this helped Confucian Korea perpetuate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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