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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북지역의 효자⋅효녀⋅효부 사례분석 ― 『慶尙道邑誌』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filial sons, daughters and daughters-in-law of Kyongsangbuk-Do Province in Chosun Dynasty - Focused on 『Kyongsang-Do-Eup-Ji』(『慶尙道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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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한국어와문학

초록

본 연구는 『慶尙道邑誌』에 실려 있는 조선시대 경북지역 41읍의 효자, 효녀, 효부의 사례들을 상세히 분석함으로써 경북지역의 유교윤리의 보급과 지역적 특성을 실증적으로 고찰한 것이다. 먼저 효자들의 사례를 유형별로 크게 나누어 보면, 부모가 병이 들었을 때는 斷指 또는 割股, 嘗糞, 吮腫, 施藥, 得魚, 得肉 등을 한 경우, 부모가 호환, 수화재, 도적 등의 위기에 처했을 때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부모를 구하거나 함께 죽은 경우, 임진왜란 때 왜적으로부터 부모의 살해나 被虜를 막고자하여 생명을 걸고 부모를 구하거나 함께 해를 당한 경우,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응한 경우, 형제간에 우애가 지극한 경우, 부모 사후 여묘를 3년 내지 6년, 9년 한 경우, 부모 사후 『주자가례』에 따라 상제를 행하거나 가묘를 설치한 경우, 부모상에 추복한 경우, 국상을 당하여 心喪 3년 한 경우, 短喪을 거부하고 3년상을 한 경우, 스승을 위하여 여묘 3년 또는 심상 3년 한 경우, 충효를 행한 경우 등으로 매우 다양하였다. 이들 사례유형 가운데 부모 생시에는 斷指 효행한 사례가 가장 많고, 부모 사후에는 여묘를 3년 내지 6년 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한편 시기적으로 볼 때 조선 후기로 갈수록 효자의 수가 증가하였다. 특히 임란 때 발생한 효자의 비중이 높았으며 순조대에 가장 많이 포상되었다. 그리고 경북지역에 있어서 포상된 효자수가 모두 319건인데 비하여 열녀수는 233건이었다. 따라서 열녀에 비해 효자의 비율이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조선왕조는 삼강윤리 가운데 효를 가장 중요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효자 가문에서 효자가 계속 나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효자들의 가계배경과 신분이 분명하였다. 효자들의 신분을 보면, 士族이 65%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평민(군인 포함)과 천민은 모두 약 22%를 차지하여 사족이 3배 이상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포상유형으로는 旌閭 또는 旌門이 49%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贈職이 많았다. 증직된 관직으로는 持平(정5품)이 가장 많고 제수된 관직으로는 參奉(종9품)이 가장 많아 주목된다. 한편 효녀와 효부 사례는 전체 효행자 가운데 약 9%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당시 조선왕조 여성에게는 부모에 대한 孝보다는 남편에 대한 烈을 더 강조함으로써 유교적 여성관을 엿볼 수 있다. 지역별 분포를 보면 안동 지역이 효자수가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이 상주지역이었다. 여기에서 경북지역 내에서도 비교적 인구가 많고 재지사족의 영향력이 강한 지역에서 효자가 많이 배출되었음을 알 수 있다.

Abstract

In this study an analysis of filial sons, daughters, and daughters-in-law at forty-one towns in the Kyongsangbuk-Do province during the Chosun Dynasty was according to the contents of the 『Kyongsang-Do-Eup-Ji』 was conducted. Also the inflow of the morality of Confucianism into the Kyongsangbuk-Do area and the regional aspects have been investigated. When the cases of filial sons have been classified, they turned out to be various. Among the classified cases, while their parents were alive, cutting off one's finger or flesh were predominant. After their parents passed away, cases of living in a small-roofed hut near the grave of his parents for three to six years was noticeable. On the other hand, toward the latter part of the Chosun Dynasty, the number of filial sons increased. Frequently, within a family of filial sons, there were many more. The family background and social status of filial sons were distinct. Looking at the social status of filial sons, 65% were Yangban, on the other hand approximately 22% came from common people(including soldiers) and slave servants. Regarding the types of rewards awarded, 49% were Chung-ryo or Chung-mun which were most frequent, and the next frequent was "Jeung-jik". Notably, among the government positions given by Jeung-jik the most frequent is "Ji-peong" and in the case of government positions "Chambong" was given frequently. On the other hand, cases of filial daughters and daughters-in-law were limited to only 9% of all the filial persons. At the Chosun Dynasty, for women it was emphasized that ”the virtous deed (烈)” for her husband is emphasized more than "filial piety(孝)“ toward their parents which is a Confucianismic view of feminity. In terms of regional distribution, the Andong area(安東) had the most filial sons and then the Sangju area(尙州). Here, it can be noted that within the Kyungsangbuk-Do area many filial sons can be found in an area where it is more populated and were the affects of the Yangban were stro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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