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陽都城의 개축과 지방 동원 체계의 변화
The Change of regional mobilization for the Construction of Hanyangdo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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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태조대 축성되어 세종대 개축된 한양도성은 축성시기별 역역 동원방식이달랐다. 초축시기인 태조대에는 단위축성 구간이 고르게 배분되었고 세종대에는인구의 다소에 따라 차등이 있었다. 태조대에는 중앙의 관료조직에 의해 감독된반면 세종대에는 지방관의 책임에 의한 축성이 이루어졌다. 한양도성 각자성석에따르면 태조대에는 600척씩 규격화된 구간에 축성관련 관료들이 조직화되어 기재되어 있다. 세종대에는 축성구간이 일정하지 않고 축성에 동원된 군현의 명칭만을새겨 놓았다. 낙산일대의 각자성석에는 ‘군현명+造排始’라는 각자의 조합 형태를띠는 구간이 존재한다. 이 구간은 홍주의 翼軍과 청주의 翼軍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세종대 역역징발은 군사적 성격이 가능한 軍翼道體制의 편제에 따라 이루어졌다고 판단된다. 이를 통해 볼 때 조선 초기의 지방제도와 이에 따른 역역체계는세종대를 전후하여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한양도성 축성은 군익도체제가 자리 잡고 鎭管體制로 나가는 발판이 되었다.
Abstract
Hanyangdoseong was built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 of the Joseon Dynasty and was rebuilt during King Sejong's reign. The National wide mobilization system adopted in construction was different depending on the construction period. Building sections were evenly distributed when the Hanyangdoseong was first constructed. At the second period there was a gap in the length of the construction sections depending on the percentage of the population. Unlike the reign of King Taejo, which was constructed by the central government, it was built by the local government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Inscribed Stones of Hanyangdoseong shows that in the Taejo’s period, central officials systematically constructed sections that were standardized at 180 meters(600chok;尺).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length of the Wall was uneven. The stones were engraved with only the names of the regions mobilized for the construction of the Hanyangdoseong. The stones on Naksan Mountain are inscribed with the inscription 'the names of the regions + Jobaesi(造排始)'. The Inscribed Stones were engraved with the names of the Ikgun(翼軍) in Hongju-Mok(洪州牧) and Chungju-Mok(淸州 牧) region in this section. The National wide mobilization of King Sejong's reign was organized according to the Gunikdocheje(軍翼道體制) system. It is believed that the local system and mobilization system of the early Joseon Dynasty were chang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Construction of Hanyangdoseong became a backdrop to the development of the Gunikdocheje (軍翼道體制) system Into the Chinkwancheje(鎭管體制) sys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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