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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75년 북한의 쁠럭불가담(non-alignment) 인식과 활동: 쁠럭불가담 회의를 중심으로

North Korea’s Diplomacy toward the Non-aligned Movement from 1970 to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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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70~1975년 북한의 쁠럭불가담(non-alignment) 관련 인식과대외활동의 양상을, 쁠럭불가담 회의의 한반도 결의안과 북한의 가입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북한은 1970년부터 다시 열리기 시작한 쁠럭불가담 수뇌자회의에 대해적극적으로 대외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은 1973년 열리는쁠럭불가담 수뇌자회의의 한반도 문제 관련 선언·결의문에 김일성이 내세운 조국통일 5대강령의 내용이 반영되게끔 다방면으로 노력했다. 이는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제4차 쁠럭불가담 수뇌자회의 최종 선언문이발표된 직후, 북한은 한반도 관련 선언 및 결의문이야말로 자신들의 ‘자주적 대외정책’의 승리라고 규정하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이러한 성과를이어받아, 1975년 페루 리마에서 열린 쁠럭불가담 외상회의에서 북한은남한을 따돌리고 홀로 가입에 성공했다. 이러한 일련의 결과에 대해 북한은 자주적 대외정책의 성과이자, 김일성의 한반도 통일 방안에 대한 국제적 지지이며, 나아가 사회주의 진영의 강화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Abstract

This study examines North Korea’s diplomacy toward the non-aligned countries from 1970 to 1975, focusing on the resolution of the Korean Peninsula question at the Non-aligned Movement (NAM) conferences and North Korea’s membership in NAM. At the NAM Summit in 1973, North Korea made various lobbying efforts to ensure that declarations and resolutions related to Korean Peninsula issues were included in the agenda following a plan based on Kim Il-sung’s ‘Five-Point Program for National Unification’, which he proposed while criticizing South Korean president Park Chung-hee’s June 23 Declaration. Diplomatically, North Korea was quite successful. Later, at the 1975 NAM Foreign Ministers Meeting in Lima, Peru, North Korea’s NAM membership was officially accepted. Regarding this series of outcomes, North Korea claimed that it was the result of its independent foreign policy and that this strengthened the socialist ca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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