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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성동유적으로 본 서기전 1세기~서기 3세기 사로국

An Archaeological Study on ‘Saro’ State from the 1st Century B.C. to the 3rd Century 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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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영남 지방 초기철기시대의 분산적 읍락들이 각 지역의 소분지를 단위로 각각 하나의 정치체로 재편된 것이 진·변한 ‘국’이라는 지역 국 가설의 견지에서 황성동유적을 시공간 비교의 축으로 삼아 경주 분지의 목관묘·목곽묘 유적들을 살펴보면 사로국은 서기전 2세기말~1세기 초에 경주 분지의 대부분 지구를 무대로 성립한다. 당시 이를 구성한 읍락(과 그 중심지)은 경주 도심(월성 부근?), 서부(사라리?), 남부(덕천리), 동남부(죽동리)에 각각 소재하였고 북부 안강 지구(안계리), 울산 동천 유역 지구(중산리)도 조만간 이에 합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로국 성립의 주요 계기는 유망인 이입과 철 생산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며, 성립기 사로국의 읍락 수장들은 이념, 경제, 무력이라는 세 가지 권력 기반 중 확고한 이념 기반을 갖고 경제 기반은 어느 정도 갖추었으나 무력은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배 同族(lineage) 집단의 長들이었다. 서기 1세기대 사로국의 읍락 수장들은 사라리 130호 목관묘와 최근 발굴된 탑동 목관묘가 가리키는 것처럼 이념, 경제 권력 기반 이외에 무력을 확보하기 시작하였으나 한 묘군에서 이와 비슷한 탁월한 묘가 복수로 나타나지 않으므로 우세를 점한 지배 동족은 여전히 출현하지 못했다고 보인다. 사로국 주수 혹은 거수는 아직 고정된 한 읍락(취락)에서 배출되지 않았으나 국읍은 지리적 이점 등을 고려하면 일찍 도심 지구로 정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서기 2세기 중엽 목곽묘의 등장에 반영된 변화상을 보건대 이제 무력까지 확보한 수장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특히 국읍 혹은 읍락 수준에서 지배층의 재편이 크게 일어난 듯하며 그것은 기존 목관묘군과 떨어져 조성되는 목곽묘들의 입지가 시사한다. 목곽묘군에서는 탁월한 분묘가 복수 또는 다수인 점으로 보아 이제 우세한 동족 집단들이 등장하였던 것으로 추론된다. 국읍은 늦어도 이 시기에 도심 지구로 정해졌을 것이며 그 이전부터 이 읍락 내 하위 취락 주민의 작업장이었던 황성동에서의 철기 제작은 국읍, 나아가 사로국의 경제 발전에 큰 토대가 되었을 것이다.

Abstract

'Saro' state seems to have been established around the turn of the 1st century B.C. as seen from the standpoint of the so-called local state hypothesis by having Hwangseongdong site as an axis of spatio-temporal comparison based on the distribution of coffin tombs sites in the Gyeongju basin. 'Saro' state is supposed to have been composed of six towns each of which were located in the present city center, the western district, the southern district, the northern district, and the southeastern district, the last being divided into two. The establishment of 'Saro' state must have been the end result of a somewhat long term social process triggered by various variables among of which the continuous immigration of peoples from northen region of the Korean peninsula and the production of iron were just the two important ones. The chieftains of the emergent state, towns and settlements who were the rulers from several ruling lineages seems to have secured the ideological and economic power, but not the military power in the light of an analysis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ir grave goods. But the chieftains of the 1st century A.D. are thought to have begun to accumulate the military power as seen from the exceptionally extravagant grave goods of Sarari coffin tomb no. 130 including lots of iron arrowhead but the status and power of the ruler interred in that tomb seems not yet to have been succeeded to other members of the same lineage, hence the office of rulership not fixed in one town. The situation changed rapidly with the emergence of wooden chamber tombs which are evaluated as reflecting the restructuring of existent order when the rulers fully secured the military power as evidenced by the magnitude of iron weapons interred into their tombs. The new wooden chamber tombs were located apart from the existing coffin tombs and among these several are prominent unlike the latter, which can be interpreted as the result of the formation of several competing ruling lineages. The primary town should have been located in the present Gyeongju city center by no later than this time. Hwangseongdong iron working complex must have contributed much to the economic development of the town and the state a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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