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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지역 목관·목곽묘의 전개와 사로국

Development of Wooden Coffin(木棺) and Chamber(木槨) Tombs in Gyeongju(慶州) and Sarokuk(斯盧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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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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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경주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대까지의 목관묘와 목곽묘에 대한 구조분석과 그 변화양 상을 추적하여 사로국의 정치, 사회적인 동향과 성장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가 기원전 2세기 후반 무렵 영남지방으로 파급되면서 경주지역에서도 철기가 부장된 군집묘(群集墓)가 조성되기 시작하며 이 후 기원전 1세기 후반에는 한군현(漢郡縣)의 설치에 따라 대동강유역의 유이민이 진한(굪韓)으로 남하, 정착하면서 전한경(前 漢鏡)과 와질토기(瓦質土器)가 부장된 중소형의 단순목관묘(單純木棺墓)가 경주지역에 등장하게 된다. 청동유물을 다량 부장 한 독립묘(獨立墓)의 주인공은 군집묘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최상위 계층의 것으로 사제왕(司祭王)일 가능성이 높으며 경 주의 각 곡간지역을 범위로 하는 지역집단의 수장묘(首長墓)로 추정된다. 기원후 2세기에 접어들면서 단순목관묘는 규모가 확대되고 부장유물의 종류와 양이 풍부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사라리 130호묘이다. 이것은 피장 자의 주관 옆에 부장품을 넣은 목갑(木匣)을 설치하여 칠기(漆器)나 동경(銅鏡) 등의 위신재(威信財)를 부장한 것으로, 이와같 은 구조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낙랑지역의 목곽묘에서 보이고 있다. 기존의 목관묘와 구조상에서 차이가 보이는 이러한 목관계목곽묘(木棺系木槨墓)의 출현은 변ㆍ진한의 철(鐵)을 매개로 한 낙랑과 이 지역과의 활발한 교섭관계를 대변해 주는 것이며 지리적으로 물류의 집산지 역할을 한 사라리 집단은 외부와의 유통과 교역을 장악하여 경주지역의 정치와 사회문 화적인 거점으로서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2세기 후반대 이후 정치체의 규모가 크게 성장한 경주지역의 분묘시설에는 부 장유물의 안정적인 공간을 위한 곽(槨)이라는 개념이 정착하게 되었고, 소형묘와 입지상에 있어 차별성을 가진 대형의 장 방형목곽묘가 3세기 전엽에 보편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지배집단 내 계층분화의 양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대형묘가 소재하는 지역이 소국의 중심지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이 지역 목곽묘의 평면구조가 점차 길어지는 경 향은 묘곽 내에 보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3세기 후반대 부곽이라는 시설을 갖춘 경주식목곽묘(慶州式 木槨墓: 동혈주부곽식목곽묘)의 등장을 가져온다. 소형의 부곽은 점차 길이가 길어져 4세기대에는 주곽의 크기에 이르는데, 이는 집단 내 계급의 분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권력의 집중화가 표면화된 것으로 경주와 주변지역 대소집단간의 통합 이 진전되는 분위기 속에서 집단 내의 질서를 일원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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