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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대청 북경사행 기록과 사행 노정 검토

A Study on the diplomatic mission to Beijing in the early Qing Dynasty in which the old and the new coex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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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1644년 청나라가 북경으로 천도하면서, 대청사행의 최종 목적지는 심양에서 북경으로 연장되었다. 1637년 대명사행 이후 8년만에 북경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육로 북경 사행의 부활이었다. 그 첫해에 갔던 사절들은 개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1645년 사행에 참여했던 정세규, 성이성 등은 풍부한 개인 체험과 감회, 그리고 명실상부한 명청교체의 외교적 현실을 사행록에 담았다. 대청 북경 사행은 이동 경로를 비롯하여 외견상으로는 대명 북경 사행과 닮아 있으나, 청나라의 일방적인 요구와 제도로 조선 사절단의 당혹감과 반발이 노출되기도 하였다. 특히 사신들의 이동과 숙소 체계는 복원이라기 보다는 갱신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장기간에 걸친 명청교체의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에 제국 경영을 위한 만주족의 이주와 조선 포로들의 정착, 한족들의 이주가 이루어지면서 사행 노정이 지나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편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정세규와 성이성은 만주족, 한족, 조선인 포로들로 이루어진 현지 주민들과의 접촉을 통해 슬픔, 분노, 혐오, 동정, 체념 등 여러 감정을 표출했다. 뿐아니라 사행단의 정사인 인평대군, 귀환 길의 봉림대군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어, 후대에 대명의리론이나 숙종 이후 격화된 당쟁으로 고착화된 이미지와 다른 본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Abstract

When the Qing Dynasty moved its capital to Beijing in 1644, diplomatic envoys to Shenyang went to Beijing. It was the first time for a diplomatic envoy to visit Beijing since his return to the Ming Dynasty in 1637. The envoys who went that first year did not leave personal records. However, the practice, which started in 1645, left a rich personal record and reported abundant diplomacy with the Qing Dynasty in Beijing. On the surface, the process was carried out in the same format as that of the Ming Dynasty, but internally, the one-sided demands of the Qing Dynasty and the embarrassment and backlash of the Joseon diplomatic mission against it were exposed. The envoys' mobility and accommodation system has been completely renewed at the zero base. The existing humanistic geographical knowledge and other new historical relics have been created, mainly those related to the unification war of the Qing Dynasty. Various emotions were exposed as the defeat of the ill-fated ship overlapped with the dispatch of the Joseon army. This period was when the Qing Dynasty and Joseon established a new relationship. With the restoration of the diplomatic mission's travel route, the envoys' questioning has expanded. Contact with Joseon envoys and residents in the Qing Dynasty has also increased. The residents consist of not only the Manchurians, but also Koreans who were taken prisoner, Han Chinese who voluntarily surrendered to the Qing Dynasty and Han Chinese who surrendered as they lost the battle regardless of their will. Different emotions such as sadness, anger, disgust, sympathy, and resignation were expressed depending on which of them the Joseon envoys met. The diplomatic records written by Jeong Se-kyu and Sung Yi-sung during their trip to the Qing Dynasty illustrate these characteristics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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