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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미디어로서의 강연회의 형성과 불온한 지식의 탄생

The Formation of the Lectures as Media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and the Origin of 'Disturbing'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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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다소 거친 규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대한제국기를 연설과 토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면, 일제의 이른바 문화정치가 시작된 1920년대는 분명 강연회의 시대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1910년대 말부터 조선총독부와 같은 관변단체나 민간단체(종교, 청년, 교육, 여성 등)를 가리지 않고 강연회를 열었으며 1920년에 이르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강연회가 줄을 이어 개최되기에 이르게 된다. 이는 물론 1920년대를 전후로 하여 일제의 통치방식이 무단통치로부터 문화정치로 일신된 제반의 과정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본고는 이렇게 일제강점기의 언설 공간을 장악하였던 강연회의 열풍에는 어떠한 배경이 존재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강연회가 매개하는 지식의 성격은 당시 제국주의 식민권력의 검열 제도와 어떤 관련성을 갖는가 하는 바를 다루고자 하는 목적을 갖는다. 주로 총독부 주관으로 이루어진 관변 연설이나 강연을 제외하고서는 일제강점기 내에서 강연회가 처음으로 열린 것은 1910년대 후반부이다. 1918년, 『每日申報』는 스스로 강연회를 주최하고 자사 지면을 통하여 홍보함으로써 ‘강연회’가 갖고 있는 미디어적 속성을 최대한 활용하였고 이후 『東亞日報』, 『朝鮮日報』 등이 생겨나 각종 단체에서 여는 강연회를 홍보하고 기사화하여 세간의 관심을 부각한 것이 최초였던 것이다. 이에 앞서 1910년 일제는 대한제국시기 선포되었던 집회에 대한 법률을 강화하여 집회취체령을 선포한 바 있었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조선인의 정치적인 집회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법률 때문에 1910년대에 있어서 연설회는 정치적인 집회로 간주되어 거의 금지되었고 총독의 연설 같은 관변 연설만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강연의 경우, 신문지법과 보안법에 의거하여 학술성을 담보로 한 것이라면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 총독부의 식민정책이었는데 이를 따라 연설회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강연회로 옮겨가게 된 것이다. 문제는 강연의 주제가 모두 학술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시사의 문제를 담고 있는 것이 많았다는 것인데, 당시 강연회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자 했던 피식민주체들은 이 때문에 제국주의 검열 권력과 표현 상 어디까지가 학술적이고 어디까지가 정치적인가 하는 해석을 위한 투쟁을 벌여나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검열 당국에 있어서도 모든 강연, 모든 지식을 용인하는 것이 아니라 불온한 강연, 불온한 지식이라는 것을 구분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Abstract

Though such a rough judgement, if the time of enlightenment(開化期) was the era of the speech and the debate, the time of 1920’s should be the era of the lecture. From the late 1910’s, the government organization(th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朝鮮總督府) and many private organizations (kinds of religion, young people, education, gender) have held many lecture meeting, especially day after day in early 1920’s. This study focuses on the background of the public interest to the lecture meeting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lecture and the censorship of the imperialism power. The lecture, related with existing the press and the mass media, got a kind of media. In 1918, Mailshinbo(daily newspaper, 每日申報) held and promote the lecture for the first time itself. Since then, Dongailbo(東亞日報) and Chosunilbo(朝鮮日報) also supported writing the article about the lecture of many organization. It might be the background of the popularity of lecture. Meanwhile, Japanes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proclaimed the ban on political gatherings, tightening up the rule of gatherings in the period of the Daehan Empire(大韓帝國). In 1910’s speeches were almost prohibited regarded as the political gathering due to the order. In those days, the lecture, however, was approved by the authorities, if, taking place for the academic purpose. By this policy, the people’s interest turned to the way of lecture, from the one of speech. The point is that the subjects of the lecture were not all based in the academic issue, hard to separate with political issue. Korean tried to express what they think through this lecture, and could help struggling with the censorship power of the empire in matter of interpreting the boundary, what is academic and what is political. Because of this situation, the censorship power of the empire got to separate the seditious knowledge beside the custom of the moderateness of the 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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