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두만강 지역의 유학자들-金魯奎와 金鼎奎를 중심으로-
The Lifeworld of Confucians in the Duman (Tumen) River Basin in the Late Chosu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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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세기 말 두만강을 건너 간도로 이주한 수많은 조선인들 중에는 상당수의 전통적 유학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특히 가장 먼저 두만강 너머로 이주했던 함경도 북단의 유교 지식인들은 대체로 중앙 학계에서 栗谷 李珥와 尤菴 宋時烈에 의해 정립된 서인-노론 학맥을 계승하고 있었다. 송시열의 제자 鶴巖 崔愼과 農巖 金昌協 등이 이 지역에서 강학을 시작한 이래 그 문하에서 함경도 출신 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하였는데, 19세기 말~20세기 초 이 지역의 대표적 유학자인 鶴陰 金魯奎와 龍淵 金鼎奎 역시 송시열이 제시한 조선중화주의의 사상적 흐름 속에서 두만강을 중심으로 한 자신들의 생활세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수’인 서구의 침략에 직면했던 시대적 상황, 그리고 중국인들과 뒤섞여 거주하며 함께 항일운동을 전개해야 했던 역사적 경험은 한반도의 협소한 시야에 갇혀있었던 전통적 중화주의의 폐쇄성을 일정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들은 태생적 혈통 내지 지역보다는 유교문화에 대한 분발 여부가 화이분별의 주된 기준이라는 문화적 화이론의 기반 위에서, 조선이 중화문명의 계승자일 뿐 아니라 함경도 역시 문명의 중심지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화이의 可變性을 재확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화이가 시대에 따라 지역적으로 순환한다는 주장을 전개하며, 자신들이 거주하던 두만강 유역을 중화문명 부흥의 새로운 공간으로 인식하는 가운데 그 곳에서 유교적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노력하였다. 요컨대, 김노규와 김정규 같은 한말 함경도의 유교 지식인들에게 두만강은 청과 조선, 중화와 이적을 가르는 경계선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두만강 너머의 공간 또한 불우한 유랑의 땅이나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서 인식되지도 않았다. 지금의 함경북도 일원 및 연변 지역을 아우르는 새로운 중화세계의 건설, 그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20세기 초반 적지 않은 유학자들로 하여금 두만강을 건너 연변 지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만들었던 사상적 배경을 이루었다.
Abstract
19世紀末期,越過豆滿江移居間島的衆多朝鮮人中也包括了相當一部分 的傳統儒教知識分子。尤其是最早遷居的咸鏡道北端的儒學者們,他們基 本上繼承了中央學系中栗谷李珥和尤菴宋時烈代表的西人-老論學脈。宋時 烈的弟子鶴巖崔愼和農巖金昌協等在咸鏡道講學之後,其門下開始正式培 養咸鏡道的儒學者。19世紀末到20世紀初期,咸鏡道的著名儒學者——鶴陰 金魯奎和龍淵金鼎奎繼承了宋時烈的朝鮮中華主義思想,并以此來認識他 們所處的豆滿江地區的生活世界。 在遭受“禽獸”西歐侵略的時代背景下,再加上與當地混居的中國人共同 抗日的歷史經歷,使他們從一定程度上克服了局限于韓半島狹小視野下的 傳統中華主義的封閉性。他們不按天生的血統和地區來區分華夷,而是以 儒教文化的發展程度爲標準,即以文化的華夷論爲本,提出朝鮮不是僅有 的中華文明繼承者,咸鏡道也可以蛻變成文明中心的可能性。他們不僅重 新確認了華夷的可變性,還提出華夷隨時代變化在地區間循環的主張,並 且將他們所在的豆滿江流域視爲中華文明復興的新空間,爲建設豆滿江的 儒教理想社會而努力。 總而言之,對金魯奎和金鼎奎等韓末咸鏡道的儒學者來說,豆滿江並非 淸朝和朝鮮,中華和夷狄的分界線。而且,將這片地區視作顛沛流離之地, 或獨立運動根據地的認識還未能成形。他們的夢想是以豆滿江下流的慶源 爲中心,在現今咸鏡北道一帶和延邊地區上建設起新的中華世界。正是在 這種思想背景下,20世紀初期有不少的儒學者跨越豆滿江而遷居延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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