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상고기 즉위의례와 유학
The Enthronement Ceremony and Confucianism Observed in Early S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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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나라에서 형성된 즉위의례는 柩前에서의 즉위, 策命의 봉독, 璽綏 의 양도, 백관의 조회와 사면, 謁廟 등의 의식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의례는 『後漢書』 예의지 大喪조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중국식 즉위의례의 상징으로 이해되는 柩前卽位儀禮는 태자 책봉을 통한 嗣位에 의한 즉위상황을 반영한다. 이 즉위의례는 三公이 『상서』 「고명」을 아뢰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주 무왕과 문왕, 그리고 선황제가 행했듯이 후계자 또한 유가적덕치를 계승하고 이를 실현할 것임을 알리는 의식이었다. 신라에서는 문무왕의 遺詔에 구전 즉위의례가 보여 이때부터 중국식 즉위의례가 실시된 것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문무왕이 왕위를 물려받을 태자에 대한 기대와 애정이 각별했음을 나타내며, 태자가 선왕의 遺志를이어 왕위를 계승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따라서 문무왕의 유조를 통해 이때부터 중국식 즉위의례가 도입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신라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 유학적 이념이 도입되면서 기존의 전통적 방식에서 변화된 즉위의례를 실시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나물왕 즉위 이후孝悌에 남다른 행실이 있는 자에게 職을 수여하였으며, 租調의 감면, 賜爵, 曲赦 등을 실시하였다. 나물왕이 孝悌를 살펴 직을 내린 것은 유교적 덕목을사회의 지배원리와 연계하려는 노력이었다. 소지왕 대에는 중국의 사례와같이 즉위 원년 大赦와 賜爵이 행해졌다. 소지왕의 자질로 孝行과 謙恭, 법흥왕의 성품을 寬厚愛人이라 한 것은 유가적 덕목이 강조되는 상황을 보여준다. 또 법흥왕이 왕위에 오르기 전 元子로 칭해졌으며, 紫極之殿에서즉위하였다는 것은 신라에서 중국식 즉위의례를 일정부분 수용하여 실시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Abstract
A coffin-facing enthronement ceremony (柩前卽位儀禮) is a set of formal acts for indicating stable succession to the throne based on proclamation of the crown prince. This ceremony, which was derived from a Chinese enthronement ceremony, reflects ideological willingness for achieving the Confucian rule of virtue as shown in its beginning process where Three Excellencies (三公) informed the crown prince about the section of the As the coffin-facing enthronement ceremony was described in the will (遺 詔) of King Munmu who wasexisting studies analyzed that a Chinese enthronement ceremony was implemented from the period of King Munmu. However, the action of King Munmu, who adopted the coffin-facing enthronement ceremony, only indicates that he showed exceptional expectations and affection for the crown prince, who was expected to succeed to the throne. In other words, the will of King Munmu is no more than a historical record that reflects the situation where the crown prince stably succeeded to the throne by carrying on the long-cherished desire (遺志) of the previous king. Thus, it is difficult to affirm that the will of King Munmu serves as a proof for the first implementation of a Chinese enthronement ceremony in the Korean peninsula from the era of King Munmu. This study analyzes that an adjusted enthronement ceremony from an existing traditional enthronement ceremony took place in Silla when the ideology of Confucianism began spreading in this kingdom due to the influence of China. Before the era of King Namul, succession to the throne was performed mainly by selection of the following king by retainers. In addition, Beolhyu of Silla, was called a saint (聖人) because he exhibited a capability of predicting good or bad harvest by foretelling the weather. As indicated these cases, Confucian aspects were not emphasized in the processes of evaluating the qualifications of the king in Silla before the era of King Namul. Then, after King Namul ascended to the throne, the kings of Silla began performing an enthronement ceremony affected by the Chinese enthronement ceremony and ruling their kingdom under the Confucian influence. For example, King Namul granted a position (職) to people who showed their outstanding devotion to their parents and affection for their siblings. He also reduced the tax (租調) on fields and implemented a special amnesty system (曲赦) for criminals which was applied in a specific region. King Soji, granted a pardon (大赦) to criminals and official ranks (賜爵) to those designated for these ranks in the first year of his accession to the throne, as done in China. It was also found that King Beopheung, was named Yuanzi (元子, the first son) before ascending to the throne and that he came to the throne in Jageukjijeon (紫極之殿, the palace with the king’s throne). These historical records serve as grounds for verifying that King Namul and the Silla kings who followed him implemented an enthronement ceremony that reflected the Confucian rule of virt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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