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유역 전기 횡혈식석실 재해석
A Reinterpretation of the Early Stone Chamber with Corridor in the Yeongsan River Ba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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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연구의 목적은 현재까지의 고고학 조사성과를 바탕으로 5~6세기동안 영산강유역에 축조된 전기 횡혈식석실의 형식분류와 편년을 새롭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원과 전개양상을 재검토하는 것이다. 먼저 필자는 영산강유역 전기 횡혈식석실을 최하단석의 축석형태와 평면형태를 조합하여 세형식(Ⅰ2 .Ⅱ1 .Ⅱ2)으로 분류하였고, 최상위 위세품과 빈번하게 출토되는 일부 유물의 조합양상을근거로 그 시기적 변천을 네 시기(Ⅰ~ Ⅳ)로 구분하였다. 다음으로 일부 연구자가 지적한 바 있는 영산강유역 전기 횡혈식석실과 (북부) 구주지역 석실간 구조 분석을 통해 연관성이 낮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특히 기원과 관련한 기존 연구에서 중요근거로 지목된 요석의 사용과 문틀식 입구 등이 한성기 백제석실에서도 확인되었고 최하단석의축석형태에서도 한성기 백제석실과의 유사성을 관찰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필자는 영산강유역전기 횡혈식석실의 기원을 기존 연구에서 지목한 (북부) 구주지역 석실이 아닌 한성기 백제석실로판단하였다. 마지막으로 상기와 같은 결과를 토대로 영산강유역 전기 횡혈식석실의 전개를 살펴보면 다음과같다. Ⅰ기에는 다양한 백제 위세품이 부장되지만 토착적인 다장습속과 영산강유역의 거점 지역에한정하여 소수의 석실이 축조되는 점에서 백제와 일정한 관계를 맺었던 영산강유역 내 일부유력집단에 의해 석실이 채용된 것으로 여겨진다. Ⅱ기에는 지역적으로 석실 형식의 이원화가이루어지고 일본의 영향을 받은 전방후원형분이 축조되는 한편 토착적인 유공광구소호와 백제의영향을 받은 개배가 공반되는 점에서 영산강유역에 대한 백제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동시에영산강유역의 토착집단이 백제-일본열도의 관계에서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과정에서영산강유역만의 다채로운 고분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Ⅲ기에는 군집화된 고분군의등장과 함께 백제토기인 삼족기와 병형토기의 부장을 통해 백제의 영향력이 점진적으로 강화된것으로 추정된다. Ⅳ기에는 영산강 하류역을 중심으로 군집화된 고분군의 확대와 동시대의백제처럼 부장유물의 박장화가 관찰되는 동시에 영산강 중류역을 중심으로 토착적인 다장습속과전방후원형분의 축조가 유지되는 점에서 해당 시기에 이르러 영산강유역에 대한 백제의 영향력이한층 심화되는 동시에 여전히 지역적 독자성을 유지한 일부 집단 역시 존재하였던 것으로 볼 수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review the first-made date, origin, and development of the early stone chamber with corridor in the Yeongsan river basin in the 5th and 6th centuries based on the accumulated research results. First, I classified the early stone chamber with corridor in the Yeongsan river basin into three types(Ⅰ2·Ⅱ1·Ⅱ2) by combining the shape of construction of the lowest floor stone and the planar form and classified the periodical transition into four periods based on the release of the highest prestige items and the combination of some of the artifacts excavated together. Next, as some researchers pointed out, there is a lack of archaeological data showing the connection between the early stone chamber with corridor in the Yeongsan river basin and the stone chamber with corridor in Kyusu(九州) area. In particular, the use of large size building stone and door-shaped entrances, which were pointed out as important grounds in previous studies related to the origin, were confirmed in the Baekje stone chamber of Hanseong period, and the similarity with the Baekje stone chamber of Hanseong period was observed in the order of construction of the lowest floor stone. Finally, the development of the early stone chamber with corridor in the Yeongsan river basin is as follows. In the phase I, highest prestige items of Baekje are buried, but only a small number of stone chambers are built in the core area of the Yeongsan River basin. As a result, the stone chamber was adopted by some of the core groups of the Yeongsan River basin, which had a certain relationship with Baekje during the phase I. In the phase Ⅱ, the stone chamber type was dualized locally, and the keyhole-shaped burial mound influenced by Japan was built, while the opening of the area influenced by the indigenous Yugong mine and Baekje was accompanied. Although Baekje's influence on the Yeongsan River basin expanded, the indigenous group of the Yeongsan River basin played a significant role in the relationship between Baekje and the Japanese archipelago, and it is estimated that various tomb cultures appeared in the process. In the phase Ⅲ, the regionally dualized construction pattern was maintained, but the appearance of clustered tombs were confirmed, the baekje pottery such as Tripod and Bottle were excavated. Based on this, it is estimated that the influence of Baekje was gradually strengthened in the phase Ⅲ. In the phase IV, the expansion of the clustered tombs around the Yeongsan River downstream area the burial artifacts have been simplified like the Baekje tombs of the same period was observed. At the same time, the indigenous multi-buried manners was maintained around the middle of the Yeongsan River and the coffin loops were excavated in the keyhole-shaped burial mound. In this respect, it can be assumed that Baekje's influence on the Yeongsangang River basin was further deepened, but there were some groups that maintained their identity even in the phase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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