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몽전쟁기 이전 고려와 東眞의 군사·외교 관계 변화 연구
A Study on the Change of Military and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Goryeo and Dongjin(東眞) before the War period against Mong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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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고려는 1219년 몽골과 형제맹약을 체결한 후에 동진국과도 외 교관계를 맺었다. 동진 사신은 1219~1222년에 갈라로 방면으로 몽골 사 신의 보조자로서 고려에 왔는데, 몽골 사신을 위한 사행길 안내, 몽골 사신 호위 및 세공 운반, 몽골 사신과 세공 배분, 조군 요청 등의 역할 을 담당하였다. 1224년 1월 몽골에 이반한 동진은 고려에 각장 설치를 조건으로 화친을 제의하였다. 동진 측의 각장 설치 요청은 그들의 식량난 및 생필품 해결을 위한 것이었다. 고려는 동진과 화친하고 몽골을 배반하는 것은 장차 몽골군의 침입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에서 각장 설치를 거부하 였다. 고려가 동진의 화친 제의를 거부하자 1225년부터 고려-동진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1227년 9월에 동진군이 동계의 정주·장주를 침략하 자 최우정권은 고려 3군을 편성하여 맞섰지만 의주 전투에서 패배하였 다. 하지만 북계 군사들을 이끌고 화주성으로 들어온 낭장 김이생이 동 진군과 싸워 적군을 1,100명이나 베는 승리를 거두었다. 이로써 동진군 과의 전쟁은 일단락되었다. 동진은 1229년 2월부터 갑자기 고려 측에 화친을 제의해왔는데, 이는 몽골이 다시 요동을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고종이 파견한 특 사인 식목녹사 노연은 동진과의 화친 체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 하였다. 이에 무인집정 최우는 예전 거제현령 진용갑을 동계로 보내 동 진과 화친을 맺게 하였는데, 진용갑은 동진과 화친 조건을 조율하는 상 태에 이르렀다. 같은 시기에, 동북면병마사 최종재는 조정에 보고하지 도 않고 독단으로 북변 사람 예작을 동진국으로 보내 동진과 화친을 도모하였다. 그러나 예작은 첩자로 오인 받아 동진국에서 처형되었다. 예작 처형 사건에도 불구하고, 최우정권은 외교문서 왕래 등 동진국과 외교적 협상을 위한 최소한의 루트는 유지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Abstract
After signing a brotherhood pact with Mongol in 1219, Goryeo also established certain diplomatic relations with Dongjin(東眞). The Dongjin envoy came to Goryeo from 1219 to 1222 as an assistant to the Mongol envoy toward Galaro(曷懶路). They were responsible for guiding the Mongol envoy, escorting and transporting Mongol envoys, and distributing Mongol envoys and crafts. Dongjin fell to Mongol in January 1224, and offered Hwachin to the Goryeo side on the condition that Gakjang(榷場) be installed. Dongjin’s request for the installation of Gakjang was intended to solvetheirfoodshortagesanddailynecessities.Goryeodidnotaccept Dongjin’s request for the establishment of Gakjang, mainly because ofconcernsthatGoryeo’sfriendlyrelationswithDongjinandbetraying Mongol would lead to Mongol invasion in the future. After Goryeo rejected Dongjin’s offer to installation of Gakjang, the war began between Goryeo and Dongjin from 1225. Later, in September 1227, when Dongjin-gun invaded Jeongju(定州) and Jangju(長州), the Choi Woo(崔瑀)’s political power formed three Goryeo troops to fight, but was defeated in the Battle of Uiju(宜州). However, Kim Yi-saeng(金利生), Nangjang(郎將) of Bukgye, fought the Dongjin Army at Hwaju Castle(和州城) and cut 1,100 enemies. This put an end to the war with Dongjin. DongjinsuddenlyofferedHwachintotheGoryeoinFebruary1229. This was because Dongjin had a great sense of crisis as Mongol, which began to attack Liaodong(遼東). King Gojong(高宗) dispatched No Yeon(盧演), Sikmoknoksa(式目錄事) to Dongjin to find out the conditions of Dongjin’s Hwachin, but No Yeon was unable to carry out his mission. As a result, the military ruler, Choi Woo sent Jin Yong-gap(陳龍甲), a former Geoje-hyeon-ryeong(巨濟縣令), to form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Dongjin, and it is estimated that Jin Yong-gap had reached a state of coordinating the conditions of reconciliation with Dongjin. At a time when Jin Yong-gap was persuading Dongjin, Choi Jong-jae(崔宗梓), Byeongmasa of Donggye (東界兵馬使) sent Yejak(銳爵) to Dongjin to promote Dongjin and HwachinwithoutreportingittotheGoryeoDynasty.However,Yejak was mistaken for a spy and executed in Dongjin. Despite Yejak execution case, it is believed that the Choi Woo’s political power has maintained an attitude to pursue diplomatic negotiations with Dongjin, such as the exchange of diplomatic docu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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