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齋日記』를 통해본 대구지역 임진왜란 의병의 활동과 성격
A Study on the Activities and Nature of the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in the Daegu Regio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rough Nakjaeilgi(樂齋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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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임진왜란 시기 대구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나게 되는 과정과 의병의 활동을 살피고 그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 것이다. 본고에서의 대구지역은 임란 당시 大丘都護府 관할 지역을 가리키는 것으로 한정하였는데, 이는 대구지역의 의병이 대구부사와 일정한 협의를 거치면서 일어났을 뿐 아니라 대구부 관할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이 조직되고 활동하였기 때문이다. 이 점은 대구지역 의병활동의 특징적인 한 모습을 드러내주는 부분이다. 최근 임란 연구에서는 의병 창의에 대한 의의를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관군의 역할을 일정하게 인정하려는 새로운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다. 본고도 이와 같은 최근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대구지역 의병의 경우 관군과의 연관 하에서 일어난 점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본고에서 활용한 주된 자료는 대구의 유력 사족이었던 樂齋 徐思遠이 남긴 일기인 『樂齋日記』이다. 그는 대구지역의 의병 대장을 맡은 인물로 결성초기부터 관여하였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그 사정을 소상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의 일기에는 대구 의병이 결성되는 과정과 활동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대구지역 의병의 특징으로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창의의 출발 단계 때부터 官民 협력체제가 비교적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창의의 주동자인 서사원은 부사와 함께 논의를 통해 의병을 구성하였고, 부사도 의병의 훈련에 참관하여 관심과 지지를 표명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대구부 전체의 의병진의 구성은 대구부의 행정조직인 면리를 기본 단위로 하여 義兵將과 有司를 배치함으로서 대구부 전체를 아우르는 형태를 취한 점이었다. 이는 安集使 金玏이 경상좌도 몇몇 고을에서 시행하여 효과를 본 체제였는데, 대구도 이 체제를 받아들여 적용한 것이었다. 대구지역 의병의 전공은 비록 혁혁하지 않았지만 관민이 협력 체제를 구축하여 대구지역 내의 산 속에 머물면서 대구부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 한 점은 일정하게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대구지역 의병의 성격은 전체 의병사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Abstract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formation process and activities of the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in the Daegu region after Japan invaded Joseon in 1592 and to ascertain its nature. Here, the Daegu region refers to the areas under the governance of Daegu Dohobu(大丘都護府) during the war since the army was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based on consultation with the Daegu Busa(大丘府使) with the noblemen of Daegubu(大丘府) forming such an army and fighting in and around Daegubu, which clearly shows a characteristic aspect of activities that the army carried out in the Daegu region. Recent studies on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have made new attempts to recognize the certain roles of royal forces without damaging the significance of the army. The present study also followed the recent flow in its research efforts. The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in the Daegu region is a good case of such armies and in connections with the royal forces. The major source of the present study was Nakjaeilgi, a journal kept by Nakjae Seo Sa-won that was a member of a prominent noble family in Daegu. He was the general of the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in the Daegu region and got involved in the army from the beginning, thus holding a position to get detailed information about its circumstances. His journal offers a good description about the process and activities of the army in the Daegu region, thus claiming great value as a historical material. The first characteristic of the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in the Daegu region was a relatively smooth cooperation system between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from the early days of its formation. Seo Sa-won, the leader of the army, discussed its formation with the Busa, who, in turn, showed his interest and concern for the army by observing its training. The next characteristic was that the organization of the army covering the entire Daegubu was based on the basic units of Myeon(面) and Ri(里), the administrative units of Daegubu, deployed the general and the secretary, and thus encompassed the entire Daegubu. The system was originally implemented by Anjipsa(安集使) Kim Reuk in some towns in Gyeongsangjwado(慶尙左道) and later accepted by Daegu. Even though the army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in the Daegu region did not perform meritorious service during the war, it deserves high evaluation in that it established a collaborative system with the royal forces, stayed in the Daegu region, and tried to protect the life and property of people in Daegubu. Those aspects of the army will be of assistance to the research on the entire history of armies raised in the cause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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