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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권역의 임진왜란 전황 연구 시론

The Study of the Righteous Army Activity in the MT. Palgong Z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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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본 연구는 임진왜란 당시 대구 지역민들의 피난처이자, 경상좌도의 중요한 방어거점인 八公山을 주제어로 하여 논지를 전개하고자 한다. 팔공산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3개의 침입로 중 2개 침입로가 지나는 중요한 장소임에도 그 연구 성과는 미미하였다. 본 연구는 팔공산을 중심으로 인접한 지역인 대구부(해안, 칠곡, 하빈)와 하양, 신녕, 부계를 ‘팔공산 권역’이라 명명하고, 팔공산이 지닌 군사적 의의와 팔공산 권역에서의 전황을 조명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성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임진왜란 당시 팔공산이 지지는 군사적 의의는 전재민에게 안전한 피란처의 역할을, 지방관에게는 제2의 관아로서의 역할을 하였음을 확인하였다. 또한 의병들에게 있어서는 의병활동의 거점으로써 활용되었고, 정유재란 당시에도 팔공산을 기반으로 하는 지역민들에게 중요한 방어 거점이자, 군량 및 군수품의 저장처로 활용되었음을 확인하였다. 둘째, 팔공산 권역의 전황을 살펴보면, 대규모 전투보다는 소규모 전투 위주로 진행되었으며, 그 시기는 임진왜란 초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것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지역유림들이 회합을 통해 전란을 미리 대비했기 때문이다. 또한 대구지역(해안, 칠곡, 하빈)전투는 연경서원을 중심으로 하는 대구유림들이 그 중심에 있었고, 신녕·하양·부계 지역은 관군 출신인 권응수를 중심으로 지역 의병장들이 가세하였음을 살펴보았다. 강화교섭기에는 팔공산 권역의 대다수 의병장들이 팔공산에 있는 공산산성을 보수하였고, 정유재란기에는 지역의병장들이 모두 합심하여 공산산성 전투에 참전하고 종전을 유도하였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tart the point of an argument with a key word as MT. Palgong(八公山), which is known to be a safe haven of Daegu local residents during Imjinwaeran, and to be a critical defense strongpoint in Gyeongsang Jwa-do Province. The MT. Palgong was a crucial position where 2 invasion routes pass out of 3 penetration paths during Imjinwaeran. However, its research outcome was slight compared to this military significance. This study inquired into the military significance, which is possessed by the MT. Palgong, and into the righteous army activity in the MT. Palgong zone, with naming it 'MT. Palgong zone as for Daegubu(Haean, Chilgok, Habin) and Hayang, Shinnyeong, Bugye that are the adjacent districts centering on MT. Palgong. Arranging the research results of this study, they are as follows. The military significance that MT. Palgong has during Imjinwaeran was confirmed to have played a role of a safe haven in war refugees, and to have functioned as the second government office in a local governor. Also, it was identified to have been utilized as the base of righteous army activity in terms of the Righteous Army, and to have been used as an important defense strongpoint as for local residents based on the MT. Palgong during Jeongyujaeran, and even as a storage place of the provisions and military supplies. Examining the righteous army activity in the MT. Palgong zone, it was progressed focusing on a small-scale battle rather than a large-scale combat. The period is concentrated on the early part of Imjinwaeran. The reason is because of having prepared already for a disaster through a vast public meeting from before Imjinwaeran broke out. In addition, the battle in Daegu area(Haean, Chilgok and Habin) was oriented by confucian scholars(儒林) in Daegu centering on Yeongyeong Seowon. The righteous army activity in the area of Shinnyeong, Hayang and Bugye was initiated by righteous army's leader focusing on Gwon Eung-su. During the Peace Overtures, the patriotic soldiers in the MT. Palgong zone repaired the Gongsan Mountain Fortress, and took the lead in the termination of war through displaying all fighting power at the combat of the Gongsan Mountain Fort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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