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고려 공민왕・우왕 시기 중방의 정치적 활용

Political utilization of Jungbang during the period ofKing Gong-Min and King Wu of Goryeo

2

조회

0

다운로드

2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중방은 무신정변 이후 권력 기구화되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무신정권 붕괴 이후, 중방의 정치적 영향력은 감소했고, 그에 따라 사료상에 나타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공민왕・우왕 시기에 중방은 정치적으로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이는 무신의 정치적 위상이 높아지고 문무반의 交通이 활발해진 것이 그 원인이었다. 공민왕・우왕 시기에는 대내외적 요소로 무신의 필요성이 증가했고, 고려 전기에는 불가능했던 문무반의 교통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요인으로 중방은 정치적으로 활용될 소지가 높아졌다. 그 결과 공민왕 시기에는 국왕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왕 시기에는 신하인 최영이 자신의 주장을 강화해 본인의 목적을 이루려는 의도로 이용되었다. 이처럼 중방이 정치적으로 활용된 것은 공민왕・우왕 시기의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른 것으로, 고려 말 변화상을 드러내는 한 소재이다.

Abstract

After the military coup d'etat(武臣政變), the Jungbang(重房) became a power organization and exerted great influence in politics. After the collapse of the atheist regime, Jungbang’s political influence declined, and the number of appearances on historical records decreased. However,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恭愍王) and King Wu(禑王), Jungbang was used politically. This was attributed to the increased political status of the military nobility and the increased traffic of Mun-muban.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and King Wu, the need for the military nobility increased due to internal and external factors, and in the early Goryeo period, the traffic of the Mun-muban, which was impossible, occurred frequently. Due to these factors, Jungbang is more likely to be used politically. As a result, it was used by the king to achieve his political purpose during the reign of King Gong-Min, and by Choi Young(崔瑩), a servant during the reign of King Wu, to strengthen his argument and achieve his purpose. The political use of Jungbang is due to political and social changes during the period of King Gong-Min and King Wu, and it is a material that reveals the change at the end of Goryeo.

참고문헌 (49)

  1. "高麗史", ~
  2. "高麗史節要", ~
  3. "太祖實錄", ~
  4. "太宗實錄", ~
  5. "世宗實錄", ~
  6. 김당택, "高麗의 武人政權" (1999), 國學資料院
  7. 김상기, "東方文化交流史論攷" (1948), 乙酉文化社
  8. 김용선, "高麗蔭敍制度硏究" (1991), 一潮閣
  9. 김용선, "(역주)고려묘지명집성 상・하" (2012), 한림대학교 출판부
  10. 김용선, "(속)고려묘지명집성 상・하" (2016), 한림대학교 출판부
  11. 김창현, "고려후기 정치사" (2017), 景仁文化社
  12. 박용운, "高麗時代臺諫制度硏究" (1980), 一志社
  13. 박용운, "高麗時代蔭敍制度와 科擧制硏究" (1990), 一志社
  14. 박용운, "高麗時代中書門下省宰臣硏究" (2000), 一志社
  15. 변태섭, "高麗政治制度史硏究" (1971), 一潮閣
  16. 허흥식, "고려의 과거제도" (2005), 一潮閣
  17. 홍영의, "高麗末政治史硏究" (2005), 혜안
  18. 內藤雋輔, "朝鮮史硏究" (1980), 京都大東洋史硏究會
  19. 강재광, "馬島3호선 木簡을 통해 본 金俊政權의 支持基盤- 三別抄․重房 관련 木簡 分析을 중심으로 -", 동방학, (29), pp.187~220 (2013), 동양고전연구소
  20. 강지언, "高麗 禑王代(1374年-88年)政治勢力의 硏究", 박사, 사학, pp.1996
  21. 고혜령, "李仁任政權에 대한 一考察", 歷史學報, 91 (1981)
  22. 김낙진, "高麗 武人政權期 曹元正 亂의 전개과정과 그 특징", 숭실사학, (37), pp.111~146 (2016), 숭실사학회[DOI]
  23. 김당택, "鄭仲夫・李義旼・崔忠獻", 韓國史市民講座, 8 (1991)
  24. 김당택, "고려 말 대외관계의 격동과 무장세력의 정치적 지향", 韓國史市民講座, 35 (2004)
  25. 김대중, "高麗前期重房體制의 成立", 國史館論叢, 61 (1995)
  26. 김철웅, "고려말 房士良의 時務 11事와 정치 성향", 동양학, (44), pp.181~200 (2008), 동양학연구원[DOI]
  27. 나만수, "高麗明宗代重房政治와 國王", 國史館論叢, 31 (1992)
  28. 도현철, "대책문을 통해본 정몽주의 국방 대책과 문무겸용론", 한국중세사연구, (26), pp.233~264 (2009), 한국중세사학회
  29. 민현구, "辛旽의 執權과 그 政治的性格(上)", 歷史學報, 38 (1968)
  30. 민현구, "千寬宇先生還曆紀念韓國史學論叢" (1985), 正音文化社
  31. 박재우, "고려 최씨정권의 政房 운영과 성격", 한국중세사연구, (40), pp.247~298 (2014), 한국중세사학회
  32. 박재우, "고려 명종대 重房의 기능과 정치적 위상", 역사학보, (248), pp.149~190 (2020), 역사학회
  33. 변동명, "고려말, 조선초의 新興武人 馬天牧", 국학연구론총, (20), pp.347~380 (2017), 택민국학연구원[DOI]
  34. 변태섭, "高麗의 三司", 歷史敎育, 17 (1975)
  35. 변태섭, "金哲埈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1983), 知識産業社
  36. 윤훈표, "朝鮮初期武科制度硏究", 學林, 9 (1987)
  37. 윤훈표, "고려말 문무병용론의 새로운 제기와 그 의미", 한국사상사학, (48), pp.77~118 (2014), 한국사상사학회
  38. 이정훈, "고려전기 學士職과 국정운영", 한국중세사연구, (26), pp.75~108 (2009), 한국중세사학회
  39. 이정훈, "고려후기 승려에 대한 봉군(封君)과 그 의미", 역사와 현실, (80), pp.93~121 (2011), 한국역사연구회
  40. 이정훈, "고려후기 改班-文‧武班을 중심으로", 한국중세사연구, (45), pp.255~290 (2016), 한국중세사학회
  41. 이형우, "禑王初期의 政治狀況과 池奫", 韓國史硏究, 94 (1996)
  42. 이형우, "우왕의 왕권강화 노력과 그 좌절-우왕 6년 이전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23 (1997)
  43. 이형우, "高麗恭愍王代의 政治的推移와 武將勢力", 軍史, 39 (1999)
  44. 이형우, "공민왕대 후반의 국정 운영과 주도 세력", 한국중세사연구, (62), pp.147~181 (2020), 한국중세사학회[DOI]
  45. 임경희, "마도 2호선 발굴 목간의 판독과 분류", 목간과 문자, 6 (2010)
  46. 전경숙, "고려전기 군사기구 연구", 박사, 한국사, pp.2007
  47. 정두희, "高麗末期의 添設職", 震檀學報, 44 (1977)
  48. 홍영의, "려말선초 개성부의 위상과 판사(유후)의 역할", 한국학논총, 35, pp.75~106 (2011), 한국학연구소
  49. 홍영의, "공민왕대 후반의 정국운영과 신돈의 집정", 한국중세사연구, (62), pp.81~111 (2020), 한국중세사학회[DOI]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4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