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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政 초반 성종의 왕권에 대한 검토 - ‘戊戌之獄’을 중심으로

A Review of King Seongjong’s Royal Authority in the Early Days of the Chinjeong Reign: Focusing on the Musuljio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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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기타인문학

초록

본고는 소위 무술지옥이라는 사건을 통해 친정 초반 성종의 왕권에 대해 검토한 연구이다. 무술지옥은 승지로 있던 현석규와 임사홍 등이 대간과 예문관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던 일련의 소요를 말한다. 성종 7년 친정이 시작되면서 성종이 당면한 과제는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친정체제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성종은 그동안 예문관과 대간 등에서 자신과 친분을 쌓아온 인사들을 주목했는데 그중에서도 현석규는 성종의 신임이 두터웠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현석규가 성종으로부터 특별한 신임을 받자 현석규에 대한 견제가 시작되었고, 음행녀 조씨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는 임사홍 등 다른 승지들과 갈등이 일어났다. 성종은 승지들 사이의 충돌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현석규를 끝까지 비호했지만 현석규에 대한 견제는 심화되었고 결국 외직에 임명되며 측근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게 된다. 현석규에 이어 도승지가 된 임사홍은 대간의 언론이 과도하다며 이를 제약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가 탄핵을 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현석규 사건 당시 임사홍이 대간을 사주해 현석규에 대한 탄핵이 시작되었음이 알려졌다. 결국 임사홍을 비롯해 함께 공모했던 유자광 등은 유배형에 처해졌고, 임사홍은 소인으로 규정되어 성종 치세 내내 정치적 금고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 성종의 왕권과 관련해 무술지옥이 갖는 의미는 성종은 우문정치를 지향하며 신료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측근세력을 조성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는 점이다. 성종은 유주이자 택군으로서 우문정치 시행을 통해 자신이 군주가 되기에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공적 질서가 크게 확대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강화된 공적 기준들은 왕권 또한 공적 기준과 도덕적 권위 하에 제약될 필요가 있다는 당위성을 강화시키며 성종의 왕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 결과 현석규와 임사홍처럼 성종에게 특별한 신임을 받으며 측근 인사로 성장해 나갔던 사람일지라도 문제가 있을 경우 그들을 권신으로 규정하면서 적극적인 공격에 나섰다. 세조와 정난공신들 사이에 형성되었던 관계와 비교해 볼 때 상이한 모습이라 할 수 있는데, 친왕세력 조성에 실패한 성종으로서는 그만큼 신료 사회 전반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Abstract

This paper is a study that reviewed the royal authority of King Seongjong in the early days of the chinjeong reign through the so-called musuljiogk. This incident took place in the process of King Seongjong's creation of pro-king forces. Seongjong trusted Hyun Seok-gyu and Lim Sa-hong and tried to foster them as close aides, but they were ousted from the court by cheong-yojig officials. Although Seongjong pursued a woomun politics and received a lot of support from his ministers, the support of his subjects did not lead to the formation of an aides. King Seongjong's excellent management of state affairs greatly expanded the public order, but such strengthened public standards also limited the royal authority. As a result, even those who had grown into close aides with special trust from Sung Jong, such as Hyun Seok-gyu and Lim Sa-hong, were defined as powerful people and expelled after intensive checks if problems were found. Eventually, King Seongjong failed to create a pro-king force, and it became difficult to control the overall bureaucracy.

참고문헌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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