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통의 한국민주화운동 -1970~80년대 활동을 중심으로
(A Study of) Hanmintong’s Demoncratization Movement for South Korea: Focus on the Activities of the 1970~8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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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70~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한국만의 운동이 아니었다. 특히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일본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세계 각국에서 전개되었던 해외 ‘한국인’의 운동을 이어주는 거점이었다. 당시 일본에는 민단계 재일조선인과 기독교인이 한국민주화운동을 전개하고 있었고, 이들의 운동을 일본인 지식인, 기독교인 등이 지원하고 있었다. 민단민주화운동세력이 중심이 된 민단계 재일조선인은 민단민주화운동을 전개하다 민단에서 배제된 후 김대중에게 영향을 받아 한국민주화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민단민주화운동세력은 김대중과 ‘연대’를 모색하던 도중 김대중이 납치되자 단독으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 국민회의 일본본부’(한민통)를 결성해 한국민주화운동을 전개했다. 한민통 운동의 핵심어는 김대중 구명운동과 ‘연대’, 그리고 문화를 통한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민통은 김대중과의 ‘연대’ 모색 과정에서 결성된 만큼 김대중의 구원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이는 정치범들의 구원운동으로 이어졌다. 김대중, 정치범의 구명운동을 위해 제3세계 비동맹국가나 사회주의인터내셔널과 교류했다. 특히 재일조선인정치범 구원운동의 일환으로 정치범의 가족을 유엔에 파견해 정치범의 실상을 전하는 등 적극적으로 정치범 문제를 세계에 알렸다. 또한 일본사회의 한국민주화운동을 위한 여론형성을 위해 일본의 사회당 등에 소속된 국회의원, 재일조선인정치범 구원운동을 하는 단체와 ‘연대’를 했다. 또한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중심인물인 김정남과도 교류하며 운동의 외연을 넓히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민통의 운동은 문화활동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노동운동이나 사회현실을 그린 영화, 연극 등을 제작하는 등 문화활동을 통해 일본 사회의 한국민주화운동에 대한 여론형성을 꾀했다. 하지만 한민통은 주요 간부가 조직을 떠나는 등 조직 내에서는 균열이 생겼고, 이러한 균열에는 한국 정부의 ‘관여’도 있었다. 한국 정부는 재일조선인 관련 ‘간첩사건’을 발표하면서 몇몇 사건에 한민통이 연관되어 있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발표로 한민통에 대한 ‘불순분자’ 이미지는 한층 강해졌고, 결국에는 김정사사건으로 한민통은 ‘반국가단체’로 규정되었다.
Abstract
Zainichi Koreans from the Mindan-affiliated groups led the Democracy movement, claiming that the Mindan, which followed the South Korean government. However, the Zainichi Koreans were excluded by the Mindan because they were regarded as ‘Anti-state Forces’ . Afterward, they officially formed the organization which was Korean Congress for Democracy and Unification, Hanmintong. Hanmintong advocated the slogan which was a cultural solidarity with the campaign to save Kim Dae-jung. Because they were formed in the process of standing solidarity with Kim Dae-jung, they launched their movement with the emphasis on the campaign to save Kim Dae-jung. This also led to a life-saving campaign for political prisoners. In order to shape public opinions for the South Korean Democratization Movement in Japanese society, Hanmintong forged links with lawmakers belonging to Japan’s Socialist Party and organizations that conduct a campaign to save political prisoners who were Zainichi Koreans. Above all, it can be seen that their movements are linked to cultural activities. They induced the Japanese society to form public opinions on the South Korean Democratization Movement through cultural activities such as labor movements, films, plays depicting social re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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