羅唐戰爭의 전개와 報德國
The Development of the Nadang War and Bodeokguk
1
조회
0
다운로드
5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글에서는 나당전쟁기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을 둘러싼 신라와 당 사이의 갈등과 그 추이를 살폈다. 670년 신라는 백제 고지 점령을 본격화하는 한편,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신라의 행보에 대해 당은 「설인귀서」를 보내 신라가 안승을 외원으로 삼아 백제 고지를 점령해 나감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에 대해 신라는 「답설인귀서」에서 백제 고지 점령에 대해서는 정당성을 주장하였지만, 당에 대한 배반 행위는 없었다고 밝혔다. 「설인귀서」와 「답설인귀서」의 내용을 대조해 보았을 때, 당시 나당관계에서 외교적 쟁점이 된 ‘신라의 당에 대한 배반 행위’는 신라와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의 연합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672년 고구려 고지에서 전개된 석문전투에서 신라는 크게 패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과 연합한 사실까지 당에게 밝혀졌다. 이때 신라는 대당 사죄사를 파견하여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과 연합한 사실에 대하여 당에게 사죄하였다. 당은 674년에 ‘신라가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을 받아들여 백제 땅을 지키게 하였다’는 사실, 즉 보덕국을 명분으로 문무왕의 관작을 삭탈하고 신라에 대한 공격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보덕국은 고구려의 체제와 제사를 계승하였고, 신라에 의해 안승은 고구려왕으로 책봉되었으므로 사실상 고구려가 재건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당은 오랜 시간에 걸쳐 공략한 고구려가 재건된 것에 대해 경계하였을 것이다. 675년 신라는 대당 사죄사를 파견하였고, 곧이어 문무왕의 관작은 회복되었다. 하지만 676년 기벌포 전투까지 신라와 당 사이에는 여러 번 교전이 이어졌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신라의 백제 고지 점령이 곧 당의 신라 공격으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이글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나당전쟁에서 고구려 부흥운동 세력을 둘러싼 신라와 당 사이의 갈등은 점차 증폭되어 갔고, 결국 당은 674년 보덕국을 명분으로 신라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당시 토번과 고구려 고지에 대한 안정적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당이 서둘러 신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게 된 것은 보덕국을 중심으로 한 고구려 부흥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존 나당전쟁에 관한 연구들이 백제 고지를 둘러싼 신라와 당 사이의 갈등을 군사적 측면에서 살펴보았다면, 이 글은 외교문서, 대당 사죄사 파견과 같은 외교적 사실도 함께 고찰하였다. 나당전쟁에 대한 보다 새로운 이해와 관점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Abstract
This study set out to examine the conflicts between Silla and Tang and their progress around the forces of the Goguryeo Restoration Movement during the Silla-Tang War. In 670, Silla occupied the highlands of Baekje in full scale and started to support the forces of the Goguryeo Restoration Movement. Tang expressed its complaints about these moves of Silla that occupied the highlands of Baekje with Ahn Seung as Oiwon by sending “Seoringuiseo”. In its reply “Dapseoringuiseo”, Silla insisted on the legitimacy of its occupation of Baekje's highlands and stated that it engaged in no acts to betray Tang. The comparison of “Seoringuiseo” and “Dapseoringuiseo” in terms of content shows that “Silla's acts to betray Tang”, which stirred a diplomatic controversy in Silla-Tang relations, concerned the alliance between Silla and the forces of the Goguryeo Restoration Movement in those days. In the Seokmun Battle that happened in a highland of Goguryeo in 672, however, Silla not only suffered a huge defeat, but also had its alliance with the forces of the Goguryeo Restoration Movement exposed to Tang. Silla dispatched an envoy to Tang and apologized for its alliance with the forces of the Goguryeo Restoration Movement. In 674, Tang removed King Munmu from office and declared an attack to Silla under the cause of Bodeokguk, which involves the fact that “Silla accepted the forces of the Goguryeo Restoration Movement and had them guard the land of Baekje.” Bodeokguk inherited the system and ancestral ceremonies of Goguryeo, and Ahn Seung was installed as a king of Goguryeo. As a result, Goguryeo was restored in reality. Tang must have looked out for the restoration of Goguryeo that it targeted over many years. In 675, Silla dispatched an envoy to Tang for an apology, right after which King Munmu's office was restored. However, Bodeokguk remained. There were several battles between Silla and Tang until the Gibeolpo Battle in 676. The academic circles have believed that Silla's occupation of Baekje's highlands led to Tang's attack of Silla. The present study found out that the conflicts between Silla and Tang escalated gradually over the forces of the Goguryeo Restoration Movement during the Silla-Tang War and that Tang declared a full-scale war against Silla under the pretext of Bodeokguk in 674. At that time, Tang did not ensure its stable rule over the highlands in the Tibetan Empire and Goguryeo. Despite it, Tang was hasty to attack Silla because of Bodeokguk. Previous studies on the Silla-Tang War examined the conflicts between Silla and Tang over the highlands of Baekje in the military aspect. The present study looked into diplomatic facts, as well, including diplomatic documents and the dispatch of an envoy to Tang for an apology. The study is expected to provide a new understanding and perspective of the Silla-Tang War.
참고문헌 (47)
- "三國史記", ~
- "舊唐書", ~
- "新唐書", ~
- "資治通鑑", ~
- "唐會要", ~
- "玉海", ~
- "郭行節墓誌", ~
- 권덕영, "중국 소재 한국 고대 금석문" (2015), 한국학중앙연구원
- 김강훈, "고구려부흥운동 연구" (2022), 학연문화사
- 金東旭, "古代韓國史" (1981), 日新社
- 노태돈, "삼국통일전쟁사" (2009), 서울대학교출판부
- 서영교, "羅唐戰爭史硏究" (2006), 아세아문화사
- 徐仁漢, "羅唐戰爭史" (1999), 國防軍史硏究所
- 이상훈, "나당전쟁연구" (2012), 주류성
- 李昊榮, "新訂 新羅三國統合과 麗·濟敗亡原因硏究" (2001), 서경문화사
- 임기환, "고구려정치사연구" (2004), 한나래
- 鄭求福, "譯註 三國史記 3" (1997), 韓國精神文化硏究院
- 주보돈, "김춘추와 그의 사람들" (2018), 지식산업사
- 津田左右吉, "滿鮮地理歷史硏究報告 1" (1913), 南滿洲鐵道株式會社
- 김강훈, "高句麗復興運動 硏究", 박사, pp.2018
- 김병희, "新羅-唐 戰爭史 硏究", 박사, pp.2021
- 金壽泰, "한국사시민강좌 13" (1993), 일조각
- 김수태, "신라의 천하관과 삼국통일론", 신라사학보, (32), pp.25~81 (2014), 신라사학회
- 김정민, "669년 신라의 사죄사 파견과 나당전쟁의 발발배경", 한국사연구, (178), pp.101~132 (2017), 한국사연구회
- 김종복, "高句麗 멸망 이후 唐의 지배 정책-安東都護府를 중심으로-", 史林, 14 (2003), 수선사학회
- 김종복, "남북국(南北國)의 책봉호(冊封號)에 대한 기초적 검토", 역사와 현실, (61), pp.61~85 (2006), 한국역사연구회
- 김진한, "「답설인귀서」에 보이는 신라·당 밀약 기사의 사료적 검토", 인문논총, 71 (2014),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 閔德植, "羅·唐戰爭에 관한 考察 -買肖城(매소성) 전투를 중심으로-", 史學硏究, 40 (1989), 한국사학회
- 박현숙, "「답설인귀서」, 나당전쟁기 신라 외교의 표상", 내일을 여는 역사, 10 (2002), 내일을 여는 역사
- 拜根興, "新羅 文武王代의 對唐外交", 新羅文化, 16 (1999),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 배근흥, "“羅唐戰爭” 硏究 中의 몇 가지 問題", 중국학보, 46, pp.245~268 (2002), 한국중국학회
- 신은이, "보덕국의 탄생과 그 의미", 대구사학, 132, pp.237~273 (2018), 대구사학회[DOI]
- 서영교, "신문왕대 보덕성민의 반란과 핼리혜성", 인문학연구, 36(3), pp.225~254 (2009), 인문과학연구소
- 梁炳龍, "羅唐戰爭 進行過程에 보이는 高句麗遺民의 對唐戰爭", 史叢, 46 (1997), 고대사학회
- 이미경, "新羅의 報德國 지배정책", 대구사학, 120, pp.101~131 (2015), 대구사학회
- 이상훈, "나당전쟁기 신라의 대규모 축성과 그 의미", 한국고대사탐구, (23), pp.79~104 (2016), 한국고대사탐구학회[DOI]
- 이상훈, "나당전쟁 연구동향과 전망", 군사, (100), pp.11~38 (2016),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DOI]
- 이상훈, "나당전쟁의 개전 시점과 주체에 대한 재검토-최근 대두되는 ‘신설’의 비판을 중심으로-", 한국고대사탐구, (32), pp.547~565 (2019), 한국고대사탐구학회[DOI]
- 李成市, "6-8世紀の東アヅア世界", 日本歷史, 2 (2014), 岩波書店
- 여호규, "遺民墓誌銘을 통해본 唐의 東方政策과 高句麗 遺民의 동향", 동양학, (69), pp.73~103 (2017), 동양학연구원[DOI]
- 조릉, "唐新戰爭 前期 당의 한반도 전략과 전쟁의 추이", 중국사연구, (115), pp.77~103 (2018), 중국사학회[DOI]
- 전경효, "7세기 후반 나당관계와 김유신", 대구사학, 115, pp.1~36 (2014), 대구사학회
- 정선여, "신라로 유입된 고구려 유민의 동향 - 報德國 주민을 중심으로 -", 역사와 담론, (56), pp.71~106 (2010), 호서사학회
- 정병준, "吐蕃의 吐谷渾 倂合과 大非川 戰鬪 - 唐朝의 韓半島 政策과 관련하여 -", 역사학보, (218), pp.309~340 (2013), 역사학회
- 이케우치 히로시, "고구려 멸망 후 유민의 반란 및 당과 신라의 관계", 고구려발해연구, 48, pp.253~295 (2014), 고구려발해학회
- 최진열, "唐 前·後期 羅唐戰爭 서술과 인식 – 『唐會要』와 『通典』의 분석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논총, (56), pp.136~192 (2017), 동북아역사재단[DOI]
- 정병준, "武則天과 한반도 정세(黃約瑟)", 신라사학보, (35), pp.217~264 (2015), 신라사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