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고대의 大宰府의 기능과 新羅問題
古代日本の大宰府の機能と新羅問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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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대재부의 출현은 백강전투라는 동아시아의 전란 속에서 외교, 군사적 대응의 필요성에서 만들어져 8세기초 대보령의 제정과 더불어 令制 官司制로 출현했다. 이것은 신라를 의식한 법제화이고 현실적인 외교기능도 신라에 한정되었다. 신라와의 국교가 재개되는 668년 이후 779년까지의 대재부를 통해 내항하는 외국사절은 신라가 유일했으며, 대재부의 대외업무는 신라를 위한 관사였다고 해도 무방하다. 국방의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대재부는 대외긴장의 대부분은 신라와의 관계에서 나왔다. 국제정세의 변화, 외교관계의 악화에 따른 신라에 대한 군사상의 응징 발언은 다분히 권력자의 新羅=蕃國이라는 이념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지만, 국방태세의 강화라는 일면이 있고 대재부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9세기 이후가 되면 일본조정의 위기관리시스템은 대재부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신라인의 군사적 동향을 조정에 보고하기 전에 정해진 警固式에 따른 군사적 대응을 하고 있다. 장보고를 중심으로 한 해상교역단의 대재부에의 내항과 新羅賊이라고 불리우는 무장선단의 내습에 연동하여 대재부관내의 거주 신라인의 연루,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려는 재지 국사들의 비리 속에서, 대재부는 신라인의 내항금지, 富豪浪人이라 불리우는 국사의 歸京을 청원하는 개혁안을 통해 서해도의 관할기구로서의 위치를 바로 세우려고 했다. 신라를 상대로 한 8-9세기의 대재부의 대외기능은 교류와 경계의 양면성을 갖고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경쟁국 신라국의 극복이라는 국가적 과제 속에서 대재부의 역할을 자리매김할 수 있다.
Abstract
大宰府の出現は白江戰鬪という東アジアの戰亂のなかで、外交・軍事的な對應でつくられて、8世紀初の大寶令の制定とともに、令制官司制として出現した。これは新羅を意識した法制化であり、現實的な外交機能も新羅に限られていた。新羅との國交が再開される668年から779年まで大宰府を通じて來航する外國使は新羅だけであり、大宰府の對外業務は新羅のための官司で言ってもよい。國防の最前線を擔當していた大宰府は、對外緊張の大半は新羅との関係で出た。國際情勢の變化, 外交関係の惡化に伴う新羅に対する軍事上の膺懲的發言は、おそらく權力者の新羅=蕃國という理念的な側面が强調されているが、國防態勢の强化という一面があり、大宰府が中心になって動いている。9世紀以後になると、日本朝廷の危機管理システムは大宰府を通じてなされており、新羅人の軍事的動向を朝廷に報告するまえ、警固式によって軍事的な對應をしている。. 張寶高を中心とした海上交易團の大宰府への來航と新羅賊とよばれる武裝船團の來襲に連動して大宰府管內の居住新羅人との結託, 經濟的な利益を追求しようとする在地國司の非理のなかで、大宰府では新羅人の來航禁止, 富豪浪人という國司の歸京を請援する改革案を通じて西海道の管轄機構として位置を立てようとした。新羅を相手とした8-9世紀の大宰府の對外機能は、交流と警戒という兩面性をもち、共存しうるしかない現實で、競爭國の新羅國の克服という國家的な課題のなかで大宰府の役割を位置づけることができ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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