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시기 장성 남문의병의 활동과 성격
壬辰倭亂期、長城・南門義兵の活動と性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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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임진왜란 초기에 전라관찰사 이광이 이끈 전라도 근왕군의 무기력한 활동과 용인전투에서의 패배로 전라도의 민심이 동요되었고, 일본군의 침략에 대한 공포감이 조성되었다. 따라서 전라도의 사림들은 더 이상 관군의 활동에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나 고경명의 의병이 금산성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배하자 장성에서 김경수・기효간 등이 중심이 되어 의병을 일으켰다. 김경수는 1592년 7월 18일 장성 남문에 의병청을 설치하였고, 격문을 각 지방의 선비들에게 보내 의병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그 결과 4개월 후인 11월 24일 장성 남문에는 의병 1,620여명과 군량 486석이 모아졌다. 장성 남문의병은 장성을 비롯한 전라도 중서부지역 16개 고을의 사림들이 학연과 혈연을 바탕으로 문중의 사람, 가솔 등을 데리고 의병에 참여하였으며, 지방의 수령과 관군은 물론 인근 사찰의 승려, 노비 등도 참여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장성 남문의병은 학연과 혈연을 바탕으로 하면서 신분 계층을 초월한 전라도 중서부지역의 의병 연합체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제1차와 제3차 장성 남문의병은 근위의병으로서 북상하여 직산과 진위, 소사에서 일본군과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의곡을 각 지역의 의병소에 전달해주는 역할도 하였다. 이와는 달리 제2차 남문의병은 경상도로 진출하여 제2차 진주성싸움에 참여하였다가 순절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희생은 임진왜란 초기에 곡창지대인 호남지방을 보존할 수 있게 한 전략상의 승인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장성 남문의병은 임란왜란 초기부터 정유재란까지 3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전라도 중서부지역 16개 고을의 사람들이 신분계층을 초월하여 참여하였고 그 규모도 크고 조직적이었다는 점에서 그 특징이 있었다.
Abstract
壬辰倭乱初期、全羅観察使・李洸が導いた全羅道勤王軍の無気力な活動と竜仁戦闘での敗北で、全羅道の民心は大きく動搖し、日本軍の侵略に対して恐怖を抱くようになった。そこで全羅道の士林らは、これ以上官軍の活動には期待できないと判断し、各地で義兵を起こした。高敬命の義兵が錦山城戦闘で日本軍に敗れると、長城で金景寿・奇孝諌らが中心となって義兵を起こした。金景寿は1592年7月18日、長城南門に義兵庁を設置し、檄文を各地方の士林らに送って義兵に参加することを訴えた。その結果、4ヶ月後の11月24日、長城南門には義兵1,620餘人と軍糧486石が集められた。長城南門義兵は、長城を含めた全羅道中西部16地域の士林らが、学縁と血縁を土台として門中の人や家率などを連れて義兵に参加し、地方の首領や官軍はもちろん、近隣寺刹の僧侶や奴婢なども参加した。このような点で長城南門義兵は、学縁と血縁を土台にしながらも身分階層を超越した、全羅道中西部地域の義兵連合体的性格を帯びていた。第1次と第3次長城南門義兵は、近衛義兵として北上して稷山と振威・素沙で日本軍と戦い、多くの戦果をあげる一方、義穀を各地域の義兵所に運搬する役目も果たした。これとは異なり第2次南門義兵は、慶尚道へ進出して第2次晋州城戦闘に参加して殉節した。しかし、これらの犠牲は、壬辰倭乱初期に穀倉地帯の湖南地方を固守することができたという点から、戦略上大きな意味を持っている。また、長城南門義兵は、壬辰倭乱初期から丁酉再乱まで3回にわたって持続的に義兵活動を展開し、全羅道中西部地域16地域の人々が身分や階層を超越して参加、その規模も大きくて組織的だったという点にその特徴があ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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