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기 신라와 일본의 大宰府外交와 그 의미
Dazaihu Diplomacy Between United Sill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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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전근대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규제하는 조공체제에서 각 국가 간 외교 관계는 왕경에서 거행되는 조정외교를 원칙으로 하였다. 따라서 왕권이 실재하는 왕경은 정치적 중심지인 동시에 외교의 장으로 기능하였다. 그런데 통일신라와 일본의 외교 관계는 왕권 사이의 조정외교 이외에도 쓰쿠시(筑紫)에 위치한 다자이후(大宰府)를 매개로 하는 실무외교라는 이원적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주목된다. 대체로 7세기 중엽 이래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관계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 조정은 외교와 군사적 방어를 주 임무로 하는 官司로서의 大宰府를 정비하였다. 즉 지정학적으로 九州 서북단에 위치한 筑紫는 해외의 관문으로 국방상의 요충지였는데, 663년 백강전투라는 동아시아 전란 속에서 외교적· 군사적 대응의 필요성에서 일본 조정이 이 곳에 大宰府를 설치하였다. 대외교섭의 일환으로 일본의 대화조정이 설치한 大宰府는 7세기 후반 이래 官司로서의 대외적 기능 이외에 신라와 일본의 공적 외교가 이루어지고 기간 동안 외교의 場으로 기능하고 있어 흥미롭다. 특히 大宰府를 매개로 하는 신라와 일본의 외교 교섭은 실무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이것은 외교의례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던 8세기 중엽 신라와 다자이후 사이에 왕래된 文書外交를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Abstract
In the tribute system controlling international relations of pre-modern East Asia, conciliation diplomacy between royal authorities was a principle of diplomatic relations among each nation. Therefore, capitals where royal authorities really existed were political centers and diplomatic stages at the same time. Notably,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United Silla and Japan were maintained dually by conciliation diplomacy between royal authorities and practical diplomacy through Dazaihu located in Tsukushi. Tsukushi located at the northwestern tip of Kyushu was a gateway to foreign nations and stronghold in terms of national defense. Amidst an East Asian war named Baek River Battle in 663, the royal court of Daehwa established Dazaihu here because it was necessary for diplomatic and military responses. Dazaihu established as part of diplomatic negotiation not only took diplomatic functions as an official residence since the latter half of the 7thcentury. and but also was used as a stage of official diplomacy between Silla and Japan. Diplomatic negotiation between Silla and Japan through Dazaihu was made in practical methods and such a situation could be confirmed through diplomatic documents exchanged between Silla and Dazaihu in the middle of the 8thcentury. At that time, protocols became an importan t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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