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첨성대 천문관측대설의 종언(終焉)
R.I.P, the Hypothesis that Cheomseongdae was an Astronomical Observatory (1480~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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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이 축조한 천문관측대로 알려져 있다. 본 연구는 그런 관념이 잘못임을 밝혔다. 고대의 천문관측대는 역법 제작·운영을 위한 과학적 성격의 정밀관측과 점성을 위한 신앙적 성격의 천변관측으로 구분되는데, 이에 따라 첨성대 천문관측대설도 정밀관측대설과 천변관측대설로 나누어진다. 본 연구는 정밀관측대설의 생성과 소멸과정을 살펴보았고, 정밀관측대설이 성립할 수 없는 이유를 제시했다. 경주 첨성대가 정밀관측대일 수 없는 이유는 선덕여왕이 중국 황제의 전유물이었던 영대를 가질 수 없었고, 선덕여왕대에는 신라에 누각이 없었고, 우리나라가 혼천의를 1433년(세종 15)에 처음으로 제작했고, 신라와 고려가 자체적 역법을 제작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정리되었다. 본 연구는 천문관측대설의 근거가 타당한지를 평가하였다. 경주 첨성대의 ‘첨성대’는 ‘도리천을 우러러보며 때를 기다린 대’라는 뜻이고, ‘점성대’는 ‘첨성대’와 같은 뜻으로 파악되었다. 고려시대 문헌에서 경주 첨성대와 개성 첨성대가 공간을 뛰어넘는 삼도보계 또는 능허대(凌虛臺)의 성격으로 드러났고, 첨성대를 천문관측대로 묘사한 기록은 세종의 관천대 건립 이후에 생성된 오해를 담고 있었다. 김종직(1431~1492)이 「영일현인빈당기」(1468)에 서술한 통일신라의 역상규측 제도 발전을 조위(1454~1503)가 「첨성대」(1480) 시문에서 경주 첨성대로 옮기면서 오해가 발생했다. 따라서 후대의 문헌기록은 천문관측대설의 근거가 아니라 천문관측대설이 성립할 수 없는 증거로 봐야 마땅하다. ‘첨성대 건립 이후에 천문관측 기록이 증가했다’라는 주장은 인과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 첨성대가 유성을 관측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지점이었다는 주장은 후건 긍정의 오류에 불과하다. 첨성대의 설계에 천문상징이 반영되었다는 주장은 천문관측대설과는 무관하다. 본 연구는 천문관측대설이 타당한 근거가 단 하나도 없는 허구의 가설임을 밝혔다.
Abstract
The Gyeongju Cheomseongdae is known as an astronomical observatory built by Queen Seondeok of Silla. This study has debunked that notion. Ancient astronomical observatories are classified into precise observation for calendrical calculations and operation, which is scientific in nature, and celestial observation for divination, which is religious in nature. Accordingly, the Cheomseongdae astronomical observatory theory is divided into theories of precise observation and theories of celestial observation. This study examined the emergence and disappearance process of the theory of precise observation, and presented reasons why the theory cannot be valid. The reason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Queen Seondeok could not possess Yeongdae (靈臺), an exclusive property of the Chinese emperor; there were no water clock in Queen Seondeok’s era in Silla; the armillary sphere in Korea was first manufactured in the 15th year of King Sejong’s reign (1433); and Silla and Goryeo did not produce their own calendrical calculations. Building on this, an assessment was conducted to determine the validity of the celestial observation tower theory. The name “Cheomseongdae” cannot serve as evidence because “Cheomseong” has various meanings, and “Jeomseongdae” is understood to have the same meaning as “Cheomseongdae”. In the literature of the Goryeo Dynasty, both the Gyeongju Cheomseongdae and the Kaesong Cheomseongdae were revealed to have the nature of Nungheodae (凌虛臺), which transcends space. Records of Cheomseongdae appearing as an astronomical observatory were based on misunderstandings after the establishment of King Sejong’s Gwanchondaem(觀天臺). Therefore, even the literary records were not appropriate evidence. The claim that there was an increase in astronomical observation records after the construction of Cheomseongdae cannot establish a causal relationship and thus cannot serve as evidence. The argument that Cheomseongdae was the only point where meteor showers could be observed is a fallacy of post hoc reasoning and cannot be considered evidence. The old claim that astronomical symbols were reflected in the design of Cheomseongdae is irrelevant to the theory of astronomical observatory, so it cannot serve as evidence. The orientation of Cheomseongdae had many errors in the interpretation process, making it also difficult to consider it valid. This study revealed that the theory of celestial observation tower is a fictitious hypothesis with not a single valid piece of evi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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