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문화변동과 蘇軾의 이해 - 서화를 중심으로 -
Cultural Change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Understanding of Su Shi(蘇軾) -Focusing on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1
조회
0
다운로드
6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이 논문은 17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조선후기의 蘇軾에 대한 인식과 애호경향, 그리고 소식 서풍의 수용을 사림의 등장, 색목별 사상, 그리고 예술론이라는 세 가지의 측면을 통해 분석하였다. 고려후기부터 시작된 소식 애호와 관련 예술에 대한 관심은 조선에서도 이루어졌다. 다만 시기별로 차이가 난다. 15세기와 16세기 전반까지는 대체로 고려후기의 경향을 이었다. 이후 16세기 후반에는 勳舊세력이 쇠퇴하는 가운데 전면에 등장한 士林은 성리학에 기초하여, 소식이 불교와 道家에 우호적이었던 점과 성리학을 연 程頤와 정치적으로 대립한 사실을 이유로 들어 폄하하는 견해가 나타났다. 이 견해는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다. 그렇지만 象數學같은 북송대의 철학을 수용하고 불교와 도가 이론을 익혔으며 양명학에 관심을 기울인 徐敬德계, 특히 북인을 중심으로 소식 애호 역시 이어졌다. 이들은 色目의 해체 이후에도 남인과 서인에 편입되어 자신들의 사상과 예술 성향을 이어가며, 조선후기에 소식애호 경향과 관련 예술이 지속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런 문화현상은 1623년의 인조반정 이후 서인의 득세로 잠시 침잠해졌다가 17세기 후반의 색목의 분화와 재편 속에서 점차 다양한 편차를 가지며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북인계가 주축인 근기남인과 서인 일부가 소식상의 제작 및 소식 서체를 이용하는 등, 소식 애호 경향을 확대시켰다. 이후 18세기 전반에 이르면 心學적 요소를 중요하게 여기고 陽明學을 받아들인 소론이 주도하여 東坡體의 활용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18세기 후반에는 人物性同論을 내세운 노론 洛論의 일부 문인이 道學 중심의 성향을 유지하는 가운데 함께 하기 시작하였다. 이처럼 사림 내에서 소식 애호는 북인 및 서경덕과 관련된 부류에서 주로 이루어졌지만 시기가 흐를수록 다른 색목으로 확산되어 갔는데, 노론의 湖論을 제외하면 비록 차이가 있으나 모두 개방적인 학문자세와 사상의 유연성, 예술의 독립성을 추구하려는 부류에 의해 선택된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 흐름에 이어 18세기 말에는 漢宋折衷論에 기반을 두고 한중교류를 함으로써 翁方綱과 교유가 이루어졌고 소식 및 그와 관련된 작품이 새롭게 조선에 유입되었다. 이로써 東坡熱이 19세기에 시작되었다.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recognition and preference tendency for Su Shi(蘇軾) and embracement of his calligraphic style during the late Joseon Dynasty from 17th to 18th century, through three aspects including appearance of confucian scholars, factional ideologies, and art theory. Su Shi had been admired since the late Goryeo Dynasty, while artworks regarding him had been still attracted and produced during the Joseon era. A difference existed, however, depending on the period. The 15th century and early 16th century has seen a similar trend with the late Goryeo on the whole. In the late 16th century, meritorious elites who were the dominant group around the king, headed for downfall as neo-Confucian literati emerged. Based on neo-Confucianism, the literati used to derogate Su Shi in view of the fact that Su Shi favored Buddhism and Taoism and politically confronted with Cheng Yi(程頤), the founder of neo-Confucianism, which continued for the rest of the Joseon Dynasty. Meanwhile, Bugin(Northerners’ faction), one of the four political parties of Korea, had a penchant for Su Shi, while accepting philosophy of Northern Song Dynasty such as Xiangshu xue(象數學) and caring for Buddhism, Taoism, and Yangmingism(陽明學). They later transferred to Namin(Southerners’) and Seoin(Westerners’) even after dismantlement of factions and managed to keep their ideology and artistic disposition, which played a pivotal role to maintain a favor for Su Shi and related artworks. This tendency was once withdrawn due to dominance of Seoin faction since King Injo’s restoration of 1623. However, it appeared to expand with a wide variation since ideologies were firmly established in the middle of factional division and reorganization in the late 17th century. In particular, both Namin inclined to Bugin who belonged to Gyeonggi Namin and scholars setting foot in Noron as well as Soron manufactured statue of Su Shi and employed Su Shi calligraphy, extending tendency to yearn for Su Shi. In the early 18th century, Soron took the lead in prevalence of Dongpo ti(東坡體), while they placed emphasis on a mind and heart learning(心學) and acknowledged Yangmingism. The late 18th century witnessed part of Nangnon(洛論) scholars from Noron who imposed the argument of the sameness between human nature and material nature(人物性同論) to maintain the tendency for Learning of the Way(道學)Bugin were the first confucian scholars to adore Su Shi, which extended to other factions except Horon(湖論) scholars from Noron, resulting from open-minded learning attitude and ideological flexibility. This current continued to the end of the 18th century as Korea and China established a tie based on eclecticism between Han and Song school, followed by association with Weng Fang-gang. Then, new Su Shi’s calligraphic trace was introduced to Joseon. In the end, Dongposyndrome(東坡熱) was formed in the 19th century.
참고문헌 (87)
- 姜世晃, "표암유고" (2010), 지식산업사
- 權尙夏, "寒水齋集", ~
- 金正喜, "阮堂全集", ~
- 金昌協, "農巖集", ~
- 奇大升, "高峯集", ~
- 金誠一, "鶴峯先生文集", ~
- 南公轍, "金陵集", ~
- 南公轍, "金陵集", ~
- 林泳, "滄溪集", ~
- 朴胤源, "近齋集", ~
- 朴長馣, "楚亭全書 下" (1992), 아세아문화사
- 尙震, "泛虛亭集", ~
- 成俔, "虛白堂集", ~
- 宋時烈, "宋子大全", ~
- 申大羽, "宛丘遺集", ~
- 申欽, "象村稿", ~
- 吳光運, "藥山漫稿", ~
- 魏伯珪, "存齋集", ~
- 俞漢雋, "自著", ~
- 李德懋, "靑莊館全書", ~
- 李珥, "栗谷全書", ~
- 張維, "谿谷漫筆", ~
- 趙龜命, "東谿集", ~
- 許筠, "惺所覆瓿藁", ~
- 洪敬謨, "冠巖全書", ~
- "肅宗實錄", ~
- "中宗實錄", ~
- 강명관, "공안파와 조선후기 한문학" (2007), 소명출판사
- 김문식, "朝鮮後期經學思想硏究" (1996), 일조각
- 백인산, "조선의 묵죽" (2007), 대원사
- 송혁기, "조선후기 한문산문의 이론과 비평" (2006), 월인
- 신병주,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 (2000), 일지사
- 유봉학, "연암일파 북학사상 연구" (1995), 일지사
- 정재훈, "청조 학술과 조선성리학" (2002), 돌베개
- 정혜린, "추사 김정희의 예술론" (2008), 신구문화사
- 조성산, "조선후기 낙론계 학풍의 형성과 전개" (2007), 지식산업사
- 에덤 쿠퍼, "인류학과 인류학자들 : 영국 사회인류학의 전통과 발전" (2005), 한길사
- 강영주, "고려시대 세한삼우도의 상징과 양식 고찰 -太祖 王建陵 벽화와 海涯 題 <세한삼우도>를 중심으로-", 열린정신 인문학 연구, 17(2), pp.149~189 (2016), 인문학연구소[DOI]
- 고영진, "16세기 후반~17세기 전반 서울 침류대학사의 활동과 그 의의", 서울학연구, 3 (1994),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 고영진, "17세기 후반 근기남인학자의 사상 - 윤휴·헉목·허적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13 (1994), 한국역사연구회
- 고영진, "박세채의 학문과 儒學史 인식", 한국사상사학, (32), pp.269~303 (2009), 한국사상사학회
- 김낙진, "남명 조식 철학 사상 연구에 대한 회고와 전망", 南冥學硏究, (35), pp.61~94 (2012), 경남문화연구원
- 김문식, "월정 윤근수의 생애와 활동", 사학지, 47 (2013), 단국사학회
- 김민학, "東谿 趙龜命 문장론의 변모와 산문 연구", 석사, pp.2014
- 김세정, "우계(牛溪) 성혼(成渾) 사상의 심학적 요소", 철학논총, 61(3), pp.3~23 (2010), 새한철학회
- 김주한, "鶴峯 金誠一의 詩世界 - 親親·仁民·愛物의 시를 중심으로", 대동한문학, 4 (1992), 대동한문학회
- 김현권, "자하 신위" (2016), 추사박물관
- 김현권, "炯庵 李德懋의 회화관과 한중교류", 한국학연구, (49), pp.65~101 (2014), 한국학연구소[DOI]
- 김현권, "추사 김정희 일파의 제현화상 수용과 제작", 강좌미술사, (26), pp.1045~1077 (2006), 한국불교미술사학회
- 김현권, "추사 김정희가 수용한 翁方綱 소장 蘇軾 진영", 도시역사문화, 4 (2006), 서울역사박물관
- 당윤희, "朝鮮刊 蘇軾 詩集 板本小考-『增刊校正王壯元集註分類東坡先生詩』를중심으로", 중어중문학, (45), pp.75~101 (2009), 한국중어중문학회
- 류소진, "조선 문인 徐居正의 생활 속에 투영된 蘇軾", 중국어문학지, (60), pp.97~128 (2017), 중국어문학회
- 박경남, "16·17세기 程朱學的 道文一致論의 균열과 道文分離的 경향", 고전문학연구, (35), pp.385~424 (2009), 한국고전문학회[DOI]
- 박경남, "兪漢雋ㆍ朴胤源의 도문분리 논쟁과 兪漢雋의 各道其道論", 한국한문학연구, (42), pp.333~363 (2008), 한국한문학회[DOI]
- 박경남, "趙龜命 道文分離論의 進化와 문학관의 변화", 국문학연구, 17(17), pp.151~177 (2008), 국문학회
- 박병련, "南冥學派 盛衰過程의 政治社會的 特性과 士林의 動向", 南冥學硏究, 16, pp.6~232 (2003), 경남문화연구원
- 배원정, "高麗時代宮中繪畵의 性格과 特徵", 인문과학연구, (14), pp.117~143 (2010), 인문과학연구소
- 송혁기, "17세기 후반~18세기 초 허목 계열 남인 문단의 산문론 - 동시기 김창협 계열 산문론과의 대비를 중심으로", 민족문학사연구, 27, pp.80~108 (2005), 민족문학사연구소
- 송혁기, "조선 중기 서인계 문장가의 부상과 신흠 문학의 비평사적 위상", 민족문화연구, (65), pp.93~121 (2014), 민족문화연구원[DOI]
- 신병주, "남명학파와 화담학파의 학풍 계승에 관한 연구", 역사와 현실, (53), pp.161~185 (2004), 한국역사연구회
- 심경보, "조선후기 深衣 肖像 연구", 석사, pp.2014
- 심경호, "浦渚 趙翼의 문학관과 문학", 한국실학연구, (14), pp.137~190 (2007), 한국실학학회
- 심초롱, "윤증 초상 연구", 석사, 미술사, pp.2010
- 안순태, "南公轍 文學의 淵源에 대하여-그 家學的 성격을 중심으로-", 고전문학연구, (37), pp.203~237 (2010), 한국고전문학회[DOI]
- 오세현, "象村 申欽(1566~1628)의 道文觀과 思想的 특징", 조선시대사학보, (66), pp.123~148 (2013), 조선시대사학회
- 오세현, "조선중기 性理學의 위상과 谿谷 張維(1587~1638)의 사상적 면모", 한국사연구, (156), pp.81~114 (2012), 한국사연구회
- 오세현, "東坡 蘇軾을 바라보는 조선중기 사대부의 엇갈린 시선들 -道文論을 중심으로-", 한국문화, (71), pp.115~144 (2015), 규장각한국학연구원[DOI]
- 우경섭, "인천 학산서원(鶴山書院)과 이단상(李端相) · 이희조(李喜朝) 부자(父子)", 한국학연구, (38), pp.459~484 (2015), 한국학연구소
- 유승민, "凌壺觀 李麟祥(1710-1760) 書藝와 繪畵의 書畵史的 位相", 석사, pp.2006
- 유승민, "坯窩 金相肅(1717~1792)의 鍾繇體 受容과 그 意義", 미술사학연구, 275276(275276), pp.119~148 (2012), 한국미술사학회[DOI]
- 이완우, "白下 尹淳과 중국서법", 미술사학연구, 206 (1995), 한국미술사학회
- 이종범, "滄溪 林泳의 學問과 政論", 한국인물사연구, (9), pp.183~218 (2008), (사)한국인물사연구회
- 이종호, "신유한의 문예인식과 문장론", 한국한문학연구, (35), pp.277~315 (2005), 한국한문학회
- 이종호, "유교의 문학관과 미의식 - 李滉의 文學論과 李珥의 文道觀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38 (2001),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현일, "조선후기 京華世族의 東坡 수용 양상", 중국문학, 62, pp.193~218 (2010), 한국중국어문학회[DOI]
- 전상모, "兪漢雋의 道文分離的 書藝認識에 관한 연구", 서예학연구, (17), pp.5~37 (2010), 한국서예학회
- 정경희, "17세기 후반 ‘전향노론’학자의 사상 - 박세채·김간을 중심으로", 역사와 현실, 13 (1994), 한국역사연구회
- 정호훈, "17세기 전반 京畿南人의 世界觀과 政治論", 동방학지, 111 (2001),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정호훈, "朝鮮後期 北人의 學問 傳統과 政治 理念", 동방학지, 113 (2001),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 조규백, "조선조 문인의 蘇東坡詩 수용과 평가", 대동문화연구, (91), pp.153~182 (2015), 대동문화연구원[DOI]
- 조규백, "조선조 문인의 蘇東坡 인물 및 산문에 대한 평가", 대동문화연구, (80), pp.235~256 (2012), 대동문화연구원[DOI]
- 조성산, "18세기 영·호남 유학의 학맥과 학풍", 국학연구, 39 (2006), 한국국학진흥원
- 주승택, "朝鮮中期 道學派와 詞章派의 對立樣相 - 許筠과 三唐詩人을 중심으로", 퇴계학연구, 8 (1996), 안동대학교 퇴계학연구소
- 차미애, "近畿南人 書畵家 그룹의 系譜와 藝術 活動 - 17C 말․18C 초 尹斗緖, 李漵, 李萬敷를 중심으로 -", 인문연구, (61), pp.109~150 (2011), 인문과학연구소
- 채환종, "恕菴 申靖夏의 古文觀", 어문연구, 19 (1989), 어문연구학회
- 황위주, "朱子의 蘇東坡 排擊과 朝鮮初期 漢文學", 교남한문학, 5 (1993), 교남한문학회
- 황의동, "牛溪學의 傳承과 그 學風", 범한철학, (28), pp.31~58 (2003), 범한철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