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毓黻의 廣開土王碑 연구에 나타난 고구려사 인식 변화
Changes in the Perception of Koguryo History Reflected in Kim Yukbul's Study of the Gwanggaeto St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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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金毓黻의 첫 번째 廣開土王碑 연구는 『遼東文獻徵略』에 실렸는데, 광개토왕이 중국 사서의 구려왕 安임을 밝혔고, 17세손을 大武神王부터의 王代數로 보는 설을 제시했다. 비문의 百殘은 백제이고, 수묘인연호조의 城은 丙申 6년에 攻取한 58개 城이며, 國烟, 看烟의 업무는 제사를 섬기는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이후 『三國史記』를 읽고 광개토왕비를 새롭게 고증한 「高句麗好大王碑考證」을 『靜晤室日記』에 실었다. 이 글은 『奉天通志』에 「晉高句麗好大王碑」라는 제목으로 실렸는데, 고구려가 卽位年稱元法을 썼음을 밝혔고 丁未年의 정벌대상이 倭라고 보았으며. 태왕릉을 광개토왕릉에 비정했다. 뒤에 『東北通史』에서는 고구려가 광개토왕 14년에 요동을 점령했는데, 광개토왕비에 그 사실이 적혀있지 않는 것은 선조 대부터 燕에 신하로 복속되어 있었던 것을 기피하기 위해서라고 서술했다. 현대 중국학계의 고구려사 인식과 연구계통 및 근간은 金毓黻이 형성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흐름 위에 두고 보려는 인식이 가장 대표적이다. 고구려사를 포함한 동북지역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은 일본의 만주 침략 이후 크게 변화되었다. 이런 면은 광개토왕비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1920년대 작성한 「高句麗好大王碑考證」을 1930년대에 「晉高句麗好大王碑」로 제목을 바꿔 수록한 것에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1930년대 이후 그는 이전과 달리 중국 왕조와 고구려의 관련성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여기에는 일본의 滿鮮史觀에 대응하여 동북지역을 중원에 예속된 곳으로 규정하려는 목적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김육불의 고구려사 인식을 논할 때에는 반드시 이런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살펴야 한다.
Abstract
金毓黻关于广开土王碑的研究成果被《辽东文献征略》收录,文章中他提出广开土王是中国史书的句丽王安,并主张17代孙是从大武神王开始的王朝谱系数。他指出碑文的百残是百济,守墓人烟户段落的城指的是丙申6年攻取的58座城,国烟、看烟负责祭祀。之后,他读了《三国史记》,重新考证广开土王碑,并写了《高句丽好大王碑考证》收在《静晤室日记》。这篇文章发表在《奉天通志》,题目是《晋高句丽好大王碑》,提出高句丽使用即位年称元法,认为丁未年的征伐对象是倭国,主张太王陵是广开土王陵。后来,他在《东北通史》中主张,高句丽在广开土王14年占领辽东,而广开土王碑上没有这段内容,这是因为高句丽为了避讳从先代起被燕国服属的事实而刻意隐瞒。现代中国学界关于高句丽历史的认识和研究体系以及基础是由金毓黻形成的。最具代表性的就是把高句丽历史置于中国历史大框架的认识。他对包括高句丽历史的东北地区历史的认识在日本侵略东北之后发生巨大变化。这种变化同样体现在对广开土王碑的研究。20世纪20年代,他写了《高句丽好大王碑考证》,到了30年代改题目为《晋高句丽好大王碑》,可以看出他的认识变化。30年代之后,他不同于以往,有意强调中国王朝与高句丽的联系。这里反映了他的目的意识即对应日本的满鲜史观而把东北地区规定为隶属于中原的地方。如果想要了解金毓黻的高句丽认识,就应该事先考虑这种时代背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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