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왜구=다민족, 복합적 해적'설의 허구와 문제점 - 식민사관과 관련하여 -

The fiction and questions of the theory of "waegu=multi-nations and complex pirates"

0

조회

0

다운로드

8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일본 학계의 소위 <전기왜구>의 구성원에 관한, 현금(現今) 학계의 주요 논쟁점은, <왜구=쇼니씨 배후>설과 이에 대한 비판적 견해인 <왜구=다민족, 복합적 해적> 이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 두 학설의 타당성에 관하여 검토해보았다. <왜구=다민족, 복합적 해석>설운 주로 후지타 아키요시(藤田明良)의 연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가이즈 이치로(海津一郞), 하시모토 유(橋本雄)등은 그의 학설에 근거해 <왜구=쇼니씨 배후>설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그러나 후지타의 논문은 도처에서 한국 측 사료에 대한 곡해와 논리의 비약이 발견되어 하나의 학설로 입론(立論)되기 어려움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사에키 씨가 <왜구=쇼니씨 배후>설 근거로 제시한, 남북조 시대의 대표적 연구자 중 한 사람인 모리 시게아키(森茂曉)의 <왜구=쇼니씨 배후>설 비판에 대해서도 검토해보았다. 그러나 모리의 지적은 고려시대사(高麗時代史)는 물론 해당 시기의 대외관계사(對外關係史)에 관해 문외한(門外漢)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왜구=쇼니씨 배후>설의 일본 측 비판에 대하여, 필자는 그동안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거나 기존의 알려진 사료의 재해석을 통하여, 그리고 일본 소재 고려의 불교 문화재를 물적 증거로 삼아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이 시대 <왜구의 주체>와 <발생의 메카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가, ‘포도(逋逃)’ 즉 ‘일본에서 도주한 무리’라는 사실을 밝혔다. 즉, 당시 왜구의 주체 및 발생의 큰 원인은, 일본 규슈 지역에서의 군사적 분쟁이 초래한 상황 때문이었다. 즉 전투를 앞둔 시점에서의 ‘병량미 확보’와 전투에서 패배한 뒤 ‘일시적 도피’가 왜구 발생의 가장 핵심적인 이유 때문이었는데, 이러한 사정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사료 용어가 바로, ‘포도(逋逃)’였던 것이다. 왜구를 핵심 주제로 하는, 일본 중세의 대외관계사 연구는 일본의 역사학계에서 주요한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동 시기의 대오관계사와 일본 중세사의 연구 성과를 상호 밀접한 관련 속에서 고찰해오지 못한 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왜구의 주체나 발생의 시대적 배경을,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와 붕괴>라고 하는 당시 동 아시아 국제질서의 변화라고 하는 큰 틀 속에서, 고려와 일본 사회 내부의 사회 변동을 이해하려고 한 시도가 없었다는 점이다. 즉,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와 붕괴>가, 당시 일본 사회의 대외긴장을 완화시켰고 그로 인해 그동안 억눌려 있던 사회 내부의 다양한 모순이 일시에 폭발해 결국 남북조 동란으로 표출되었으며 그것은 십 수 년 뒤, 국경을 넘어서 왜구로 전개되어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왜구 연구는, 이웃나라의 역사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沒理解) 때문에, ‘왜구’라는 역사 현상을 인과관계(因果關係)속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한, 중, 일 세 나라 사람들로 구성된 <다민족, 복합적 해적>이라고 하는, 사료에 근거도 없는 애매모호한 존재로 규정짓고 말았다. 그 결과, 해당 시기의 일본 역사를 동 아시아 역사라는 큰 틀 속에서 상호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차단하고 말았으며, 그것이 바로 중세 대외관계사 연구가 아직까지 일본사 연구의 주요 연구 테마가 되지 못한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남북조 시대의 대표적인 연구자 중 한 사람인 모리가, 해당 시기의 동 아시아 국제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소개한 소설 속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대(対)한반도 인식에는 여전히 식민사관(植民史觀)이 뿌리 깊게 남아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식민사관이 일본의 연구자들의 대(対)한반도 역사 인식에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반영해준다. <왜구=다민족, 복합적 해적>설을 견지하는 일본 측 연구자들 중, 자신은 모리(森)와는 달리, 이러한 식민사관과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도적이었던 아니었던 간에, 자신들이 이웃나라 역사에 무지(無知)하면서 함부로 역사의 진실을 왜곡한 결과가 초래할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Abstract

The theory of "waegu=multi-nations and complex pirates," which is insisted by japanese historians, is deprived from the unknown and misunderstanding about the history of Korea. The keyword to know the true face of the Waegu of 14th century, is 'podo.' It means "the group of escape from Japan." And the situation of escape is caused by the internal war of Japanese(so-called, Nanbokucho-period). The japanese historians did not have idea to understand the background of the outbreak of waegu(wakou), in the big category of "the change of an international order of eastern asian society," in other words "the agitation and collapse of Pax mongolica."Because of the misunderstanding of Korean history and ethnic prejudice, the japanese historians could not understand the historical phenomenon, waegu in a causal relationship, but characterized it as a wague being, like the theory of waegu = multi-nations and complex pirates" or the theory of "waegu=alliance of Korean and Japanese."As a results, they cut the way of understanding the japanese history of that time, in the big category of history of Eastern Asia.

참고문헌 (27)

  1. 高橋公明, "中世東アジア海域における海民と交流", 名古屋大學文學部硏究論集, 史學, 33 (1987)
  2. 高山博, "歴史學, 未來へのまなざし" (2002), 山川出版社
  3. 橋本雄, "書評 李領著『倭寇と日麗關係史』", 歷史學硏究, (758) (2002)
  4. 橋本雄, "肥後地域の國際交流と僞使問題. in: 中世日本の國際關係,東アジア通交圈と僞使問題" (2005), 吉川弘文館
  5. 宮本常一, "旅の民俗と歴史" (1987), 八坂書房
  6. 藤田明良, "「蘭秀山の乱」と東アジアの海域世界", 歴史學硏究, (698) (1997), 青木書店
  7. 網野善彦, "鎌倉末期の諸矛盾. in: 悪党と海賊" (1995), 法政大學出版局
  8. 박용운, "고려시대사" (1987), 일지사
  9. 北方謙三, "무왕의 문(武王の門)" (1993), 新潮社
  10. 森克己, "日宋貿易の硏究" (1948), 國立書院
  11. 森茂暁, "南朝全史-大覺寺統から後南朝へ" (2005), 講談社
  12. 이영, "고려 말기 왜구 구성원에 관한 고찰-‘고려, 일본인 연합’론, 또는 ‘고려,조선인 주체’론의 비판적 검토", 한일관계사연구, 5 (1996)
  13. 이영, "庚寅年以降の倭寇と内乱期の日本社會. in: 倭寇と日麗關係史" (1999), 東京大學出版會
  14. 이영, "<경인년 이후의 왜구>와 마쓰라토(松浦)-우왕 3년(1377)의 왜구를 중심으로-", 일본역사연구, (24), pp.109~156 (2006), 일본사학회
  15. 이영, "14세기의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왜구 ―공민왕 15년(1366)의禁倭使節의 파견을 중심으로―", 한일관계사연구, (26), pp.95~146 (2007), 한일관계사학회
  16. 이영, "왜구의 허상과 실상. in: 잊혀진 전쟁 왜구" (2007), 에피스테메
  17. 이영, "고려 말 왜구의 허상과 실상", 대구사학, 91, pp.59~96 (2008), 대구사학회
  18. 이영, "쓰시마 쯔쯔(豆酘) 다구쓰다마 신사(多久頭魂神社) 소재 고려 청동제 飯子와 왜구", 한국중세사연구, (25), pp.409~440 (2008), 한국중세사학회
  19. 이영, "가라쓰(唐津) 카가미 신사(鏡神社) 소재 고려 수월관음도의 유래", 한일관계사연구, (34), pp.109~149 (2009), 한일관계사학회
  20. 이영, "경인년(1350)~병신년(1356)의 왜구와 규슈 정세 -쇼니 요리히사(少貳賴尙)를 중심으로*-", 한국중세사연구, (26), pp.151~190 (2009), 한국중세사학회
  21. 이영, "일본 중세 대외관계사 연구의 문제점과 영향 - 왜구를 중심으로. in: 동 아시아 속의 한일관계사" (2010), 고려대학교 일본사
  22. 田中健夫, "倭寇と東アジア通商圈. in: 『日本の社會史』 1" (1987), 岩波書店
  23. 田村洋幸, "倭寇はなぜこの時期から起こったか. in: 『日本歴史の視点』 2," (1974), 日本書籍
  24. 佐藤進一, "『中世法制史料集』 第1卷, 鎌倉幕府法, 追加法 253條", ~
  25. 佐藤進一, "倭寇の後援者. in: 南北朝の動亂" (1965), 中央公論社
  26. 秋山謙藏, "倭寇の進出と農民の掠取. in: 日支交渉史硏究" (1939), 岩波書店
  27. 荒木和憲, "對馬島主宗貞盛の政治的動向と朝鮮通交", 朝鮮學報, 189 (2003)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8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