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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왜구와 남조-경신년(1380)의 왜구를 중심으로

The Waegu of the year of 1380(庚申年) and nancho(南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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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분류역사학

초록

<경신년 왜구>는 경인년(1350) 이후 31년 동안 침구해온 왜구 중 최대 규모였다. 진포구에서 고려군의 화포 공격을 받아 타고 돌아갈 배가 불타버리자, 왜구들은 이후 수 개 월 동안 고려 내륙을 전전하면서 고려 사회에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와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기존의 일본 측 연구는 이 <경신년 왜구>에 관한 『고려사』의 기록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인 고찰을 시도하기는커녕 오히려 소위 <고려 말 왜구=고려·조선인 주체>설 내지는 <고려 말 왜구=고려·일본인 연합>설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 본 연구는 이러한 <경신년 왜구>와 관련해, 최초로 일본 측 문헌 사료에 입각해, 그 실체와 침구 배경에 대하여 고찰한 것이다. 그 결과 <경신년 왜구>는 규슈탄다이 이마가와 료슌의, 예상되는 공격에 대하여 규슈의 남조 세력이, 다카기·아마쿠사 일대의 선박을 대피시키기 위해, 그리고 남조의 본거지 기쿠치 일대가 포위당한 상황 속에서 병량미를 얻기 위해 침구했던 것임을 밝혔다. 그러한 <경신년 왜구> 중에는, 다카기·아마쿠사 지역의 수군 세력은 물론, 규슈 최남단의 오오스미 지역의 호족 네지메씨 주변의 남조 세력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상과 같은 고찰을 통해서, <경신년 왜구>를 근거로 하여 제기된 소위 <왜구=고려·조선인 주체>설 내지 <왜구=고려·일본인 연합>설은 입론(立論)부터 잘못되었음을 입증했다. 그리고 <경신년 왜구> 역시, 고려 말의 왜구가 규슈 지역의 무장 세력이 병량미의 확보와 일시적인 도피를 목적으로 침구해간 것이라는 필자의 일관된 견해를 입증하는 또 하나의 좋은 사례임을 밝혔다.

Abstract

<The Waegu of 1380 years> was the largest scale among the others invaded for 31 years after Gyeong-in(A.D. 1350). Waegu with its burned vessel from Jinpo distinct wandered around Korea inland for several months. It committed an act of brutality leaving Korea massive loss of manpower, material resources, and great shock. The existing studies of Japan did not trust records about 『The History of Goryeo dynasty』 in <The Waegu of 1380 years> so that they never tried concrete examination, but put foundation on the theories of <Waegu=the korean people> or <Waegu=the korean·Japanese union>. This study examines these documentary records relating to <The Waegu of 1380 years> for the first time, considering its entity and backgrounds of invasion. That is, <The Waegu of 1380 years> happened for kyushu's nancho(南朝) sway to take shelter vessels of Takagi and Amakusa from the attack of Imagawa ryousyun(=the commander of the muromachi bakuhu at kyushyu region). Also, to gain rices(兵糧米) in the situation of nancho(南朝)'s headquarter-kikuchi(菊池) soldiers got surrounded by enemies. Among <The Waegu of 1380 years>, not only naval forces of Takagi Amakusa distinct but also, kyusyu's furthest southern extremity-the clan of Osumi distinct nancho(南朝) sway of Nejime was involved. Through examination mentioned above, theories such like <Waegu=Korean people> or <Waegu=Korean·Japanese union> based on <The Waegu of 1380 years> was not only wrong from the build up, but also prove my opinion about the fact that Waegu-military power invaded for the gain of rices(兵糧米) and temporary escape in the end of Goryeo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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