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ERD
논문KCI 등재

중세의 왜구—학술 성과와 고교 교과서를 중심으로—

The Wakou(倭寇) of the Middle Ages

0

조회

0

다운로드

3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주제분류역사학

초록

동아시아 해역에서 활동하던 왜구에 관한 일본학자의 학술사적 연구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되었다. 왜구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 초기 왜구 연구에서는 일본 해적의 활동으로 파악하였다. 그런데 왜구의 연구가 심화될수록 왜구의 발생을 고려 내부의 문란한 정치적·경제적 혼란 상황으로 설명하는 이중적 분석이 출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왜구의 주체를 고려인·일본인으로 규정하는 일본학자의 견해의 출발은 인용한 사료의 선택에 있다. 일본 측 사료의 인용을 등한시하고 고려측 사료에만 의존한 인용이 논리의 편향을 불러왔던 것이다. 이러한 고려측 사료만의 전적인 인용은 왜구의 발생 원인을 고려 내부의 혼란 상황과 연결하고 고려 내부의 문제로만 제한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자의적인 사료 인용과 비논리성이 왜구사 연구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근래 일본학자의 논리는 왜구의 주체가 고려의 천민이고, 왜구의 활동을 이들의 활약인 것으로 규정함으로써, 왜구의 발생 원인보다는 ‘왜구 주체론’으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인학자들의 논리를 뒤집지 못하는 이유는 반대로 일본의 정치상황과 해적 활동 사이에 유기적인 관계를 분석해 내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료의 자의적 선택과 인용문의 편파적 해석으로 성립된 일본학계의 왜구 논리가 일선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에는 어떻게 접목되어 있는가를 분석해 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먼저, 왜구의 근거지, 왜구의 발생원인, 왜구의 주체와 관련하여 약 2/3 정도가 비교적 객관적인 논지로 서술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둘째로 대부분의 일본 역사교과서가 『고등학교 학습지도 요령』대로 왜구를 교류사와 교역사의 범주에 넣어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왜구의 근거지와 왜구의 주체와 관련해서 일부 일본학자의 왜곡된 견해가 그대로 반영된 예가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이를 개선하는 방법으로서 우선 한·일 학자 간의 정기적인 상호 교류와 토론을 통해서 학술적 성과를 조율하고, 교사와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교류와 자료교환을 병행하여 공동의 연구성과를 도출해 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Abstract

Historical study of the Japanese scholar about Wakou(倭寇) which moved into action in East Asia sea area began from the end of the 19th century. And the early Wakou study grasped the activity of the Japanese pirate about the origin of the Wakou. By the way, analysis of the doubleness to explain in the confusion situation of the economy and the politics to be disturbed of the Korea dynasty inside appeared so that the study of the Wakou was deepened. The opinion of the Japanese scholar who prescribed the subject of the Wakou with an alliance of the Korean and Japanese were began by the choice of the historical materials. The quotation that leaned on only historical materials of the Korea dynasty caused an inclination of the logic. The full-scale quotation only for suchthe Korea dynasty side historical materials was able to be connected by the internal confusion situation to stew the origin of the Wakou. It is natural for so arbitrary historical materials quotation and illogicalness to act on a history of Japanese pirates study with a big obstacle. And the Japanese logic guides the interest of the circumference to ‘The Wakou subject theory’ than the origin of the Japanese pirates these days. We overturn the logic of Japanese scholars, and the reason is still because that cannot let the Wakou company form newly cannot analyze organic relations between the politics situation and pirate activity adversely. A high school history textbook shows quotation of such logic. The first, the foothold, origin, the subject of the Wakou are done by an objective point of argument about 2/3 rank. The 2nd, most Japanese history textbooks belong to history of interchange and a category of trade company according to <The course of study in the high school> in the Wakou. Finally, it was the point that there was the example that a distorted opinion was just reflected of some of the Japanese scholar. Therefore, as a method to improve this, at first change periodical mutual interchange and document between the scholars and lead joint results of research and must start it.

참고문헌 (60)

  1. 菅沼貞風, "大日本商業史", ~ (1892)
  2. 渡辺世祐, "日本海上史論" (1911), 三省堂
  3. 久米邦武, "日本海上史論" (1911), 三省堂
  4. 星野恒, "海賊ノ顚末と海軍ノ沿革", 史学雑誌, 5(4, 6, 8, 9) (1894)
  5. 後藤秀穂, "予が観たる倭寇", 歴史地理, 23 ; 24(5, 6 ; 1, 2) (1914)
  6. 後藤秀穂, "最も深く内地に侵入したる倭寇の一例", 歴史地理, 25(1) (1915)
  7. 後藤粛堂(秀穂), "倭寇の説明するわが国民性の一角", 史学雑誌, 26(1) (1915)
  8. 後藤粛堂(秀穂), "倭寇風俗考", 中央史壇, 14(2, 3, 5) (1928)
  9. 青山公亮, "日元間の高麗", 史学雑誌, 32(8, 9) (1921)
  10. 青山公亮, "高麗高宗朝及び元宗朝の倭寇", 史学雑誌, 38(4) (1927)
  11. 秋山謙蔵, "‘倭寇’による朝鮮․支那人奴隷の掠奪とその送還及び売買", 社会経済史学, 2(8) (1932)
  12. 秋山謙蔵, "倭寇", 歴史学研究, 3(3) (1935)
  13. 長沼賢海, "元寇と松浦黨", 史淵, 7 (1934)
  14. 再錄, "松浦黨の硏究—北九州海賊史—", 九州大學文學部國史硏究室, 120~123 (1957)
  15. 長沼賢海, "海上交通史上の壱岐", 史淵, 12 (1936)
  16. 中村榮孝, "室町時代の日鮮關係", 岩波講座 日本歷史, ~ (1934)
  17. 森克己, "日宋交通に於ける我が能動的貿易の展開", 史学雑誌, 45(2, 3, 4) (1934)
  18. 稲葉岩吉, "日麗関係", 岩波講座日本歴史, ~ (1935)
  19. 田中健夫, "中世海外交涉史の硏究", pp.8~11 (1959), 東京大學出版會
  20. 田村洋幸, "中世日朝貿易の硏究", pp.~26 (1967), 三和書房
  21. 田中建夫, "倭寇—海の歷史—", pp.~42 (1982), 敎育社 歷史新書
  22. 太田弘毅, "倭寇と結託した朝鮮人—「賊諜」․「奸民」․「詐倭」—", 藝林, 36(3), pp.12~13 (1987)
  23. 田中健夫, "日本の社會史", pp.~150 (1987), 岩波書店
  24. 高橋公明, "中世東アジア海域における海民と交流—濟州道を中心として—", 史學, 33, pp.~19 (1987), 名古屋大學文學部硏究論集
  25. 高橋公明, "朝鮮外交秩序と東アジア海域の交流", 歷史學硏究, 573, pp.~69 (1987)
  26. 韓容根, "高麗末倭寇에 對한 小考", 慶熙史學, 6, 7, 8 (1980)
  27. 孫弘烈, "高麗末期의 倭寇", 史學志, 9 (1975)
  28. 李鉉淙, "講座 韓日關係史" (1994), 현음사
  29. 羅鐘宇, "高麗末期의 麗․日 關係—倭寇를 중심으로—", 全北史學, 4 (1980)
  30. 羅鐘宇, "韓國中世對日交涉史硏究" (1996), 원광대출판국
  31. 金琪燮, "14세기 倭寇의 동향과 고려의 대응", 韓國民族文化, 9 (1997)
  32. 李領, "倭寇と日麗關係史" (1999), 東京大學出判會
  33. 拙稿, "少貳冬資와 倭寇의 일고찰", 日本歷史硏究, 13 (2001)
  34. 남기학, "중세 고려․일본 관계의 쟁점", 日本歷史硏究, 17 (2003)
  35. 羅鐘宇, "高麗 末期의 麗․日 關係", 全北史學, 4 (1980)
  36. 拙稿, "一揆와 倭寇", 日本歷史硏究, 10 (1999)
  37. "靑方文書", ~
  38. "明月記", ~
  39. "百鍊抄", ~
  40. "吾妻鏡", ~
  41. "善隣國寶記", ~
  42. "禰寢文書", ~
  43. "南北朝遺文", ~
  44. "太平記", ~
  45. "高麗人來朝事", ~
  46. "今昔物語集", ~
  47. "禰寢文書", ~
  48. "鎌倉遺文", ~
  49. "高麗史", ~
  50. "世宗實錄", ~
  51. 李領, "高麗末期 倭寇構成員에 관한 考察", 韓日關係史硏究, 5 (1996)
  52. "成宗實錄", ~
  53. 李領, "홍산․진포․황산 대첩의 역사지리학적 고찰", 日本歷史硏究, 15, pp.40~46 (2002)
  54. "高敎日本史 B", pp.95~97, 山川出版社
  55. "新日本史 B", pp.138~140, 山川出版社
  56. "山川出版社", 三省堂
  57. 森克己, "日宋貿易の研究" (1948), 國立書院
  58. "高敎日本史 B", pp.~78, 實敎出版
  59. "日本史 B", pp.138~139, 實敎出版
  60. "高等學校 日本史 B", pp.~80, 淸水書院

관련 논문AI추천

이 간행물의 다른 논문 (13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