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천사(家なき天使)>와1930~40년대 조선의 현실 - 실화(實話)의 리얼리티를 통해 본 친일(성)의 재조명 -
Angeles on the Streets and Korea's reality in 1930s~40s
0
조회
0
다운로드
4
인용
0
참고문헌
키워드
초록
<집 없는 천사>는 1941년 2월에 개봉한 영화로, 고려영화협회가 기획 제작한 영화이다. 기본적으로 영화의 소재는 1930~40년대 경성에서 운영되었던 ‘향린원’과 관련 일화였다. 즉 실화를 바탕으로 시나리오가 구성되고 이에 따라 제작 연출된 영화라고 하겠다. 그러다보니 1930~40년대 조선의 현실을 비교적 가감 없이 포착할 수 있었다. 특히 경제적 가난과 사회적 불안이 선명하게 포착되어 있었고, 친일 장면으로 널리 알려진 ‘황국신민서사’ 엔딩(closing) 장면이 포함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집 없는 천사>는 ‘친일영화’ 혹은 ‘국책영화’로 비판받기에 이르렀고, 현재에도 그러한 시각은 여전하다고 해야 한다. 본 연구는 이 영화가 어떠한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 세밀하게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성된 리얼리티(reality)가 어떠한 양상을 표출하고 있는지 살펴 본 이후에, 그 결과 현실 반영성과 친일성 사이에서 파생되는 양자적 문제에 대해 다른 시각에서 논구하고자 했다.
Abstract
Angeles on the Streets(Jib-eop-neun cheon-sa) was a Korean film released in February 1941, aiming to export to Japan from the beginning. In addition, Angeles on the Streets(Jib-eop-neun cheon-sa) is a film planned and produced by Goryeoyeonghwahyeopoe(고려영화협회). Basically, this film was related to Hyangninwon(향린원), which was run in Choseon in the 1930s~1940s. Based on the story of ‘true story’, a script of Angeles on the Streets was created, and the movie based on this script was Angeles on the Streets. Especially, Angeles on the Streets clearly shows economic poverty and social unrest. In addition, Angeles on the Street includes the closing scene of the ‘Ethics of a loyal citizen’, widely known as the oath allegiance to Japan. This is why Angeles on the Streets came to be criticized as ‘the movie that praises Japan’ or ‘the movie in favor of national policy’. And even now, such criticism is still to be said. This study will reconstruct the details of what the film is based on, and examine what kind of reality is being created based on it. And then, based on the results, this study will discuss how to judge the quantum problems that arise between the reality reflection and the loyalty to Japan.
참고문헌 (24)
- "‘집 없는 천사(天使)’들에 선물", 매일신보, 1941년 2월 5일, ~ (1941)
- "<집 없는 천사(天使)> 명치좌에서 봉절(封切)", 매일신보, 1941년 1월 16일, ~ (1941)
- "각종사회사업단체를 점차 공영(公營)키로 결정", 매일신보, 1943년 1월 28일, ~ (1943)
- "경전원(京電員)의 미거(美擧) 향린원에 동정금", 매일신보, 1940년 12월 20일, ~ (1940)
- "고아 800명 초대 인천에서 야유회 성대", 매일신보, 1941년 5월 7일, ~ (1941)
- "구호법령 실시 촉진", 매일신보, 1941년 10월 11일, ~ (1941)
- "남방(南方)서 온 따뜻한 정(情)", 매일신보, 1943년 2월 24일, ~ (1943)
- "남풍관(南風館)에 인정의 꽃", 매일신보, 1943년 6월 18일, ~ (1943)
- "동양극장 폐쇄―건물과 흥행권의 이동으로", 매일신보, 1939년 8월 25일, ~ (1939)
- "배정자 씨 상대 수형금(手形金) 청구 소(訴)", 매일신보, 1939년 8월 26일, ~ (1939)
- "순회복음교(巡廻福音校) 성황(盛况)", 동아일보, 1936년 7월 14일, ~ (1936)
- "아이는 天使와 같다", 삼천리, 12(10) (1940)
- "역경에서 광명에 희망의 신천지 개척", 매일신보, 1942년 2월 1일, ~ (1942)
- "영화와 예술", 매일신보, 1941년 1월 29일, ~ (1941)
- "청추의 영화", 삼천리, 12(9) (1940)
- "향린원고아들에게 일 년 간 학용품 기증", 매일신보, 1941년 6월 13일, ~ (1941)
- 최인규, "10 여 년 ‘나’의 영화 자서", 삼천리 (1948)
- 최정희, "孤兒의 樂園 香隣園을 찾어", 삼천리, 12(10) (1940)
- 김남석, "조선의 영화제작사들 : 1920~1940년대", pp.59~202 (2015), 한국문화사
- 강성률, "일장기 앞에 서면 갈등이 해결된다-최근 발굴된 <집 없는 천사>와 <지원병>의 친일 논리", 실천문학, (78) (2005), 실천문학사
- 방수원, "<집 없는 천사>의 낙원 향린원 생활기", 삼천리, 13(6) (1941)
- 서재길, "<집 없는 천사(家なき天使)>와 식민지 영화 검열", 한림일본학 (구 한림일본학연구), (27), pp.113~139 (2015), 일본학연구소[DOI]
- 소현숙, "황국신민'으로 부름받은 '집 없는 천사들' ―역사 사료로서의 영화 <집 없는 천사>", 역사비평, (82), pp.484~494 (2008), 역사문제연구소
- 주창규, "이행적 친일영화(1940~1943)로서 <집 없는 천사>의 이중 의식에 대한 연구 -식민지 파시즘의 시각성과 균열을 중심으로-", 영화연구, (43), pp.355~403 (2010), 한국영화학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