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진 명창의 예술 활동
Art Activities of Pansori Master Park D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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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박동진(1916~2003)은 우리시대의 대표적인 판소리 명창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평생 동안 다양한 무대에 출연하여 자신의 예술세계와 예술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 글에서는 박동진 명창이 벌인 다양한 예술 활동과 그가 현대판소리사에서 가지는 위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박동진 명창은 20대부터 달성권번과 경주권번 등에서 소리선생을 하면서부터 단체 활동을 하였으며, 다양한 판소리 무대에서 수많은 공연을 하였다. 1947년부터 조향창극단 단원으로 거창과 합천 등지에서 경찰을 위문하는 공연을 하였고, 1951년에는 국민방위군 산하 정훈공작대에서 국군 장병을 위문하는 공연을 하였다. 그 후 1952년에 박록주가 재건한 국극사를 비롯하여 햇님국극단, 새한국극단, 우리국악단 등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61년 1월에 국립국악원에 들어가 정년 때까지 14년 동안 근무하며 판소리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제2대 국립창극단 단장(1975.1.1.~1979.12.31.) 재임 시에 매년 2편씩 총 10편의 창극을 무대에 올려 창극 발전에도 이바지하였다. 그리고 박동진은 1968년의 <흥보가> 완창을 시작으로 <춘향가>(1969), <심청가>(1970), <적벽가>(1971)와 <수궁가>(1971)를 완창하여 판소리 완창시대를 열었으며, 그 후에도 끊임없이 완창무대에 서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쳤다. 그리고 국립창극단의 ‘판소리감상회’, 판소리보존연구회의 ‘판소리유파발표회’, 뿌리깊은나무의 ‘판소리감상회’, 동아일보사의 ‘명창명인대회’, 조선일보사의 ‘국악대공연’, 전주 우진문화공간의 ‘판소리 다섯 바탕의 멋’ 등 다양한 무대에 출연하여 판소리의 맛과 멋을 알렸다. 그리고 국립창극단 단장으로 재임한 5년 동안에 <배비장전>(1975), <춘향전>(1976), <흥보전>(1977) 등 10편의 창극을 무대에 올려 창극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햇님국극단, 새한국극단, 우리국악단 등에서 <바보 온달>(1952), <마의태자>(1955), <그리운 사람>(1957), <나비와 월화>(1960) 등 다수의 여성국극과 창극을 작곡하거나 편곡하였다. 둘째, 박동진 명창은 창작판소리를 다수 발표하고, 실창판소리 복원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구주 성탄>(1969), <부활가>(1970), <갈릴리의 봄>(1973), <모세전>(1980) 등 기독교 관련 성서판소리를 발표하였으며, <충무공 이순신>(1972)과 <치악산>(1972) 등 창작판소리도 여러 편 발표하였다. 그리고 <변강쇠타령>(1970), <배비장타령>(1972>, <숙영낭자전>(1974) 등 실창판소리를 복원하였다. 셋째, 박동진 명창은 방송에 여러 차례 출연하여 소리를 하거나 자신의 삶과 예술세계를 알렸으며, 다수의 음반을 남겼다. 동아방송(DBS)의 판소리드라마 <숙영낭자전>(1976)과 <배비장타령>(1976) 등에 출연하였고, MBC 라디오의 「사설 한마당」(1988)과 SBS TV의 「코미디 전망대」(1992)에 출연하여 잘못된 세태를 날카롭게 풍자, 비판하기도 했다. 그리고 박동진 명창이 남긴 음반 중에서 SKC에서 제작한 <인간문화재 박동진 판소리 대전집>(18CD)은 기념비적인 음반이다. 넷째, 박동진 명창은 판소리 완창시대를 열어 꺼져가던 정통 판소리를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고, 국립창극단 단장으로서 창극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그리고 창작판소리 발표와 실창판소리 복원을 통해 창작판소리의 기틀을 마련하고, 판소리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 데도 이바지하였다.
Abstract
Park Dongjin(1916~2013) is one of the representative pansori masters in our times. He showed his art world and mind to us on a variety of stages without any regret during his life. This paper has explored his various art activities and his status in the history of modern pansori. The results are as follows: First, Park Dongjin started his group activities as a pansori teacher in his twenties at Dalseong and Gyeongju gisaeng communities, and had many performances on a variety of stages. He served as a pansori singer for shows to comfort police officers at Geochang and Hapcheon and acted as a member of Johyangchanggeukdan of the People’s Defence Army in 1947. He also served as a pansori singer for shows for soldiers at the promotion unit of the People’s Defence Army in 1951. In 1952, he acted as a pansori singer at Gukgeuksa of Park Rokju, Haetnimgukgeukdan of Kim Jujeon, Saehangukgeukdan of Kim Kyeongyae, and Urigukgeukdan of Kim Yeonsu. He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pansori, working at the National Gugak Center for 14 years from January 1961 until his retirement. After retirement, he was appointed the second head(1975.1.1.~1979.12.31.) of the Korea National Changgeuk Company, and he also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changgeuk, putting two changgeuk on the stage every year. He revealed his art world by singing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Heungboga>(1968), <Chunhyangga>(1969), <Shimcheongga>(1970), <Jeokbyeokga>(1971), <Sugungga>(1971), and other pansori in 1968. He showed the taste and flavor of pansori on a variety of stages such as the special pansori show by the National Changgeuk Company. He made great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pansori by putting ten pansori on the stage for 5 years when he served as head of the National Changgeuk Company. He composed or arranged many pansori at Haetnimgukgeukdan and other Gukgeukdan. Second, he made many creative pansori, and restored lost pansori. He made known Christianity-related pansori such as <The Birth of the Savior>(1969>, <The Song of Resurrection>(1970), <Spring at Galilee>(1973), <Mosejeon>(1980), and creative pansori such as <Chungmugong Yi Sunsin>(1972) and <Chiaksan>(1972). He restored such lost pansori as <Byeongangsoetaryeong>(1970), <Baebijangtaryeong>(1972), <Sukyeongnangjajeon> (1974) and so forth. Third, he showed his life and art world and sang pansori at several radio and TV programs, and left many records. He appeared on the DBS pansori drama <Sukyeongnangjajeon> (1976), and <Byeongangsoetaryeong>(1976). He appeared on <Saseolhanmadang>of MBC Radio and on the <Comedy Observatory> where he satirized and criticized our wrong ways of the world. He made records of his singing, and 18-CD-album <Human cultural treasure Park Dongjin’s Big Album> produced by SKC is his representative album. Fourth, He opened a new era of singing pansori to the end, and contributed greatly to restoring the authentic lost pansori and to developing changgeuk as head of the Korea National Changgeuk Company. He also made contribution to gaining ground for the creative pansori and expanding the pansori world by making new pansori and restoring the lost pan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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