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삼에 대한 인식 변화 - 1763년 癸未使行을 중심으로 -
Changes in Recognition of Joseon Ginseng : Focusing on Kyemi Envoy in 1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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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21세기 현재까지도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조선의 특수작 물인 인삼의 인식 변화에 대해 살펴본 글이다. 조선인삼은 통신사행이 일 본에 갈 때마다 일본인들에게 선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계미사 행을 기점으로 일본인들의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본고는 이 작 은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조선인삼의 인식 변화는 국제 정세와 일본 국내 상황과 결부되어 변화한다. 지금까지 조선인삼의 인식 변화에 대한 별다 른 논의가 없어 본고에서는 문화변동의 기점을 1763년 계미사행으로 전제 한 뒤 계미사행 때와 이후 신미통신사에서 드러나는 상이성을 바탕으로 인식 변화를 추이해보았다. 조선인삼은 예나 지금이나 약초로서 큰 효능을 지니고 있다. 계미사행 까지만 해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조명되었으나 그 이후 일본이 국제 시장 과 동아시아 관계에서 앞장서 나가기 시작하자 부정적인 측면이 강조되 기 시작한다. 이러한 결과는 조선 내 인삼 생산에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 이지만 일본이 점차 국제 관계에서 힘을 갖게 되자 빚어진 현상이었다. 조선인삼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수단으로 권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힘은 조선 국내뿐 아니라 결국 식민지 시대로 넘어가면서 일본도 이용하 게 된다. 한 가지 대상에 대한 인식 변화는 단시간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면 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조선인삼 지배 야욕을 보이는 일본의 인식은 이 미 18세기부터 태동했다고 보며 당시 인삼을 바라봤던 일본인들의 의식을 살펴보았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the changing perception of Japanese in 18th century of Joseon Ginseng, a special crop of the Joseon Dynasty, which is still popular with Japanese people in this 21st century. The diplomatic mission of the Joseon Dynasty always brought the ginseng every time they visit Japan. The ginseng was an enviable object to Japanese at that time. However, after the visit of the Joseon diplomatic mission in 1763(Kyemi Envoy, or Kyemi-tongshinsa), the Japanese began to have a different perception of Joseon Ginseng. This paper has begun to raise questions about the seemingly trivial changes. The perception of Japanese on Joseon Ginseng at that time changed with the international situation and the domestic circumstances of Japan. Until now, there has been little discussion about the change of Japanese perception of Joseon Ginseng. With this in mind, in this paper, I consider the diplomatic visit in 1763 as the starting point of cultural change. Then, on the basis of the differences found in Kyemi envoy and its subsequent visit to Japan by Shinmi-tongshinsa, I examined the changes in perception of Japanese on the ginseng. It is well known that Joseon Ginseng has great efficacy as a herb. At the time of the diplomatic visit in 1763, the ginseng was illuminated on the positive side. Since Japan has taken the lead in the international market and East Asian relations, however, the negative aspects of Joseon Ginseng begin to be emphasized. This phenomenon was caused by problems of the production of ginseng in Joseon Dynasty, but it also happened when Japan became increasingly powerful in international relations. Joseon Ginseng had power as a means of accumulating wealth. This power of Joseon Ginseng was not only powerful in domestically, but also used by Japan when Joseon Dynasty became a Japanese colony. Changes in perception of an object do not ensue in a short-term. In the modern era, Japan gradually recognizes Joseon Ginseng as the object of domination. Observing the change in perception of Japanese on Joseon Ginseng, I would like to argue that this change has already started from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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