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民意 收斂에 관한 연구
A study for the opinnion collection of the people in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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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조선 시대 민의 수렴 장치로서 어사, 상소, 상언과 격쟁에 대해 살펴 보았다. 어사는 국왕에 의해 임명되어 임시적으로 특정 분야의 민의 파악에 활용되었다. 국민들에 의한 제도적 민의 표출 방법 중 상소는 포괄적 언로 개방 원칙에 따라 자격 제한 없이 언제, 어느 때라도 가능하였다. 또 평민들이 억울한 내용을 호소할 수 있는 장치로 두 가지가 있었는데 상언은 문자로, 격쟁은 징이나 북을 쳐서 민의를 표출하였다. 이런 제도들은 당시에도 중요한 민의 수렴 장치였지만, 현대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제도들은 어느 시대의 국정 운영에서나 매우 의미 있는 민의 수렴 장치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민의 수렴을 하고자 하는 기본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다. 민본 정치를 내세웠던 우리 조상들의 고귀한 국정 운영 원칙을 잘 살려 행정에 반영하는 것이다. 민의 수렴의 수월성이 증대했고, 수렴되는 민의의 양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지만, 항상 민의를 토대로 하고 이를 행정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정신은 크게 배울 점이다. 둘째, 여론 표출의 방법이 다양해지고 빈도도 크게 증가했다고 하지만 조선 시대의 상소처럼 활성화되어 있지는 못한 것 같다. 국민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다양한 민의가 대변되고 있지만, 여기서는 국민들의 민의가 자칫 黨利黨略에 의한 것으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셋째, 국정 담당자들에 의해 조작된 여론에 대해서는 엄정한 대처 방법이 살아 있어야 한다. 誣告나 謀陷에 대해서는 사법부인 법원의 판결에 의해 처벌을 받지만, 잘못된 정보나 오도된 여론에 대해서는 방지 장치가 없다. 행정 담당자가 자기와 같은 의견만 듣고,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쉽게 폄하하는 수가 많은데 이에 대한 대처 방법이 필요하다.
Abstract
This article analysed about 'eo-sa', 'sang so', 'sang eon' and 'geok jaeng' as the methods of the opinnion collection of the people in late Joseon dynasty. Eo-sa, king's special inspector, worked temporally for collecting people's opinnion. Sang-so was the method people could send their opinnion and message freely anytime and any where. But it could be used by literated people. Sang-eon and geok-jaeng were the methods people who felt chagrin sent their message directly to the king and executives. These methods gave us much important administrative meannings. Firstly, we have to succeed the spirit of the people oriented governing. Secondly, sang so was a good method any other than modern style opinnion representation meth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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