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구언제도의 절차와 내용 연구
Chosun's Koounjedo:Opinion seeking policy's procedures and 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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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논문의 목적은 구언제도의 사상적 연원인 재이론을 살펴본 후 조선시대 구언제도의 절차와 내용, 문제점과 한계, 구체적 용례 등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데 있다. 중국 춘추시대부터 기원한 구언제도는 한나라에 이르러 체계적으로 정착되었으며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그 편린이 보였고 고려시대에 제도적으로 정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하향식 여론수렴제도의 하나로 받아 들여졌다. 조선시대 구언제도는 백관진언(百官陳言) 유현수의(儒賢收議) 궐문전순문(闕門前詢問) 등 3가지 형태가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백관진언’이었고 ‘궐문전순문’은 거의 없었다. 원론적으로 구언응지 상소자에게 죄를 줄 수 없었지만 현실적으로 치죄(治罪;국문․체차․파직․하옥․유배․죽임)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중기이후 구언제도는 상소자를 죄인으로 만들어 오히려 언로를 막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상소내용이 당론에 입각한 사적 담론이거나 진정성없이 형식적으로 흘렀기 때문이었다. 결국 구언제도는 군신상호간 불신만 높여 조선 초기에 정도전이 의도했던 공론형성기능을 상실한 채 유명무실한 제도로 변모되었다.
Abstract
The purpose of the study is to explore Koounjedo, an opinion seeking policy and its philosophical base called Jayroan, a traditional approach to natural disasters. The study looked at Chosun dynasty's Koounjedo, specifically its procedures, forms, problems, limitations, examples, and so on. Dated from the Chinese Warring States period, the practice was systematically established in the Han dynasty. In Korea, the custom traced back to the Three Kingdom era, institutionalized in the Koryeo dynasty. It was considered a kind of public appeal system, hearing active and direct voices of the Chosun people. There were three forms of the practice, 'Baikkwanjinun'(the majority form), 'Yuhyunsueui', and 'Kuearlmunjeonsunmun'. Although those who submitted a memorial to the king were granted immunity, some people went to their doom (discharge, trial, prison, death, etc). Since the middle of Chosun, the practice tended to make appellants the victims of the system, which rather resulted in a communication impasse. The reason for the deadlock is that most memorials were written either for partisan's sake or for treacherous purpose. Eventually, the system was degenerated as the relations of sovereign and subject fell into mistrust. It became in name only despite Jungdojeon, the founding thinker of the dynasty, hoped to establish a public sphere of opin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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