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綜合博物館’ 구상의 식민성
Building the General Museum of the Governor-General and the reform of japanese colonization plan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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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일제는 조선 강점 초기부터 역사와 박물관을 식민지 통치에 활용하고자 했고, 이에 조선총독부박물관을 개관했다. 그래서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일제강점기의 대표적인 식민문화기관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만주사변 이후 급변한 식민지 조선에서의 박물관이 지니는 식민성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한다. 1930~40년대 일제의 조선지배 정책변화에 따른 새로운 식민성이 내포된 박물관은 시정25주년기념사업으로 등장한 綜合博物館이다. 종합박물관사업은 宇垣一成 총독부터南次郞 총독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어 심전개발운동, 황민화정책, 병참기지화 등 당시 조선총독부의 핵심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종합박물관은 고고미술관, 과학관, 조선자원관으로 시작하여 미술전시관(조선총독부미술관)이 추가된 대규모 박물관계획이었다. 종합박물관은 기존 박물관의 확장이 아니라 만주사변, 조선공업화정책, 중일전쟁 등 당시 시대정황 속에서 등장한 시대의 산물이다. 조선총독부는 종합박물관을 통해서 ‘역사조선’, ‘자원조선’ 그리고 ‘과학조선’을 이루겠다며 식민통치 활용 방향을 드러냈다. 이는 박물관의 식민성이 역사에서 자원과 과학 영역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전시체제기에도 종합박물관사업은 예산과 규모면에서 계속 확대되어 갔으며, 예산마련에 조선총독부 전체가 동원되었다. 이 사업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중일전쟁 이후 물자난으로 종합박물관사업이 중단되었으나, 미술전시관은 1939년 완공되어 ‘조선총독부미술관’이 되었다. 조선총독부미술관은 조선총독부 권력이 직접 주도하여 ‘조선색’이라는 전근대적인 식민지 조선의 이미지를 창출하고 유통시키는 조선미술전람회의 공간이다. 조선총독부미술관이가장 먼저 완공된 것은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한 ‘조선색’ 유통으로 천황제 이데올로기 강화 즉 황민화정책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종합박물관사업은 중일전쟁을 기점으로 그 성격이 변화한다. 중일전쟁 이전까지 종합박물관의 중심 전시관은 역사유물을 전시하는 고고미술관이었다. 하지만 1939년 이후에는 과학관이 중시되었다. 이는전쟁확대로 조선의 자원 수급과 활용이 시급해지면서 새로운 식민성인 ‘과학성’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종합박물관사업 초기에는 당시조선공업화정책 영향으로 전시 분야가 조선의 자원과 산업으로 확대되었으나 여전히 역사유물 중심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시체제기들어서 군수공업 중심으로 사회가 움직이자 박물관도 시대 흐름에맞추어 천연자원의 수급과 활용을 위한 식민지적 ‘과학성’을 중시하게 되었다. 이상과 같이 종합박물관사업은 중일전쟁 이전까지는 기존 총독부박물관의 식민사관을 계승하고 당시 핵심정책인 천황제 이데올로기강화에 집중했다. 하지만 중일전쟁 이후 식민지인의 사상통제와 충량한 식민지인 양성 그리고 식민지 조선의 자원 활용이 시급해지면서 종합박물관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둔 ‘과학’으로 포장된새로운 식민성이 부각되었다.
Abstract
After the Manchurian incident in 1931, Imperial Japan(or Empire of Japan) reformed their ruling regime of Korean peninsula by the on-going military conflict in Manchuria. Followed up to this rapid reform, Imperial Japan conceptualized The General Museum of the Governor-General in the memorial of 25 years colonization of Korea(‘General Museum’ as belows). The General Museum was intended to integrate Governor-General Museum and Colonial Scientific Museum(恩賜記念科學館), and additionally open a section for Korean mineral exhibition(朝鮮資源館). These three division symbolized the historical review, scientific achievement and mineral development of colonized Korea. This colossal government plan could not be realized because of the lack of capitals during the Pacific war but the Gallery of the Chosen(朝鮮總督府美術館). The foundation of General Museum was initiated by Ugaki Kazushige, who promoted the balanced development of agriculture and industry(農工竝進) and the integration of Korea and Japan(內鮮融和). Following Ugaki, governor Minami Jiro actively indulged in Kominka policy of making koreans to imperial citizens(皇民化政策). Subsequently, the General Museum was deeply connected with these Governor-General's plans such as making imperial citizens, logistics basement of Korea and etc.. The emphasis on the scientific achievements of Korea on General Museum were also deeply related to the changed policy of Imperial Japan during 1930~40 years, coincided with there military expansion on East Asia. Furthermore, The new built Gallery of Korean Governor-general was concentrated to exhibit the 'Local color’(朝鮮色) and justify Tenno' regimen on Korean peninsula. Like this, the General Museum reflected the change of Imperial Japan tactics to Korea and East Asia during their war campaign to East Asia. Since Imperial Japan regarded Korea as a colony and logistic basement for expansion to East Asia, the meaning of General Museum should be changed from traditional historical exhibition to scientific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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